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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처럼 매일 그림만 그렸지요, 내 남편 유영국

서울 방배동 자택 뜰에 선 유영국 화백의 부인 김기순(92)씨. 남편은 10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안방 옆 화실은 그대로다. 그리고 만년에 붓을 잡지 못하고 바깥만 내다보던 남편을 위해 심은 고향 울진의 소나무도 그대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망인은 꼿꼿이 앉은 채 조곤조곤 말했다. 큰 의자 옆 작은 의자가 그의 자리였다. 큰 안락의자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쉼터였다. 안락의자의 주인은 10년 전 가고 없지만 그가 쓰던 화실은 그대로다. 큰 그림 두 점, 그리고 이젤이 여럿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엔 물감 튜브가 한가득이다.

 14일 서울 방배동 유영국 화백의 자택 화실에서 부인 김기순(92) 씨를 만났다. 부부는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 집은 차남인 건축가 유건(59)씨의 첫 작품이다. 황해도 사리원고녀를 나온 김씨는 스물넷에 경북 울진 바닷가 마을로 시집갔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온 신랑은 훤출했다. 일본에서도 꽤 이름을 알린 화가라 했지만, 결혼 후 10년간 그림 그리는 모습은 별로 못 봤다. 선주의 아들이었던 그는 직접 선원들을 부려 배를 몰았고 종종 만선(滿船)도 했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냈지만 2년 만에 전쟁이 났다. 울진에 내려가 양조장을 하며 소주를 만들어 팔았다. 직접 라벨을 디자인한 ‘망향’ 소주는 고향 잃은 이들이 많던 당시 인기를 끌었다.

유영국의 ‘작품’(1988). 130×194㎝ 유화. 생전에 그는 “일본에서 미술학교를 마치고 머무르다가 돌아와서였지…. 뭘 해야 할 것인가 생각 끝에 오래 계속할 수 있는 주제는 산이라고 작정하고 그 길로 들어섰지”라고 회고했다.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김씨의 표현대로라면 유영국은 “기계같이 그렸다.” 오전 7시 반에 깨어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반에 화실로 건너가 그리다가 11시 40분쯤 나와 손 씻고, 12시 땡 치면 점심이 차려져 있어야 했다. 오후 1시쯤 화실로 돌아가 6시에 저녁 식사하러 나오고, 그 뒤엔 낮에 낭비한 시간만큼을 다시 화실에서 벌충했다. “제 생활도 그에 맞춰 돌아갔죠. 지금은, 구심점이 없으니 무위도식이죠. 식사 시간은 오랜 습관대로 그때와 똑같아요.”

 일본서 돌아온 뒤 10년간의 공백기가 유영국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일생에 남들보다 못 그린 시간이 많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늘 그를 사로잡았다. 57세에 당뇨, 61세엔 심근경색 등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그에 더해졌다. 김씨는 바로 그런 화가의 아내로 58년을 살았다.

 유영국이 그렇게 열심히 그린 것은 강렬한 원색과 보색 대비로 이뤄진 우리 산이었다. 화폭 속 산들을 추상화된 삼각형이다. 첫 개인전은 1975년, 환갑에 비로소 열었다. 현대화랑 개인전에서 난생 처음 그림도 팔았다. “정말 기뻐하셨죠. ‘내 본업이 화가인데 그걸로 가정을 부양할 수 없는 게 참 맘에 걸린다’고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돈도 중요하지만, 남이 내 그림을 인정하고 원한다는 거니까요.”

 그렇게 매일매일 개미처럼 그리던 유영국은 만년에 2년 가량 붓을 들지 못했다. 김씨는 그런 남편에게 다가가 “지금이 참 좋은 시간이에요. 많은 일을 하셨으니 이제 다 놓고 편안한 시간 보내셔도 된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유영국은 하나도 기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창밖만 내다봤다. 김씨는 남편을 위해 고향 울진의 소나무들을 뜰에 심었다.

 유영국은 세상을 떠나기 전 주변을 깔끔하게 단속했다.

 “자식들에게 ‘미술관 하지 말아라. 그건 가족이 아니라 기관에서 할 문제다’‘내 이름 딴 미술상 만들지 말라’ 이런 것들을 누차 강조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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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