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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시아 입헌주의의 새 지평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헌법학
100년 전 선각자들에 의한 조선의 근대화 작업에는 사법도 한몫했다. 1895년 개설된 법관양성소는 최초의 서양법제에 입각한 근대적 사법교육기관이다.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 초대 부통령 함태영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지만 조선의 실패한 개혁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방 이후 혼란의 와중에 탄생한 대한민국의 법적·이념적 기초인 국민주권주의는 현실의 국가 속에서 심각한 도전과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마침내 1987년 헌법체제에서 그동안 쌓아온 산업화의 튼튼한 기반 아래 민주화의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잡게 됐다. 두 번에 걸친 평화적 정권교체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안착을 웅변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속으로 뻗어가는 나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대한민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헌법재판 제도의 창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 이상 전통적인 사법제도로는 그 작동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자유에의 의지를 불태운 1960년 4월 학생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 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를 도입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문서상의 제도로 그치고 말았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제6공화국 헌법에서 다시 한번 헌법재판소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입헌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해 헌법재판소가 87년 체제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기우를 깨끗이 씻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한국적 입헌주의의 정립을 향한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2011년 1월 브라질에서 개최된 세계헌법재판소장 회의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를 2014년 차기 대회 주관기관으로 결정했다. 2014년 회의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아재연합) 창립총회가 오는 20일부터 서울에서 열린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장이 초대 의장을 맡는다. 그간 유럽헌법재판소 회의, 중남미헌법재판기관 회의, 프랑스어권 헌법재판소연합과 같은 헌법재판에 관한 지역별·언어권별 협의체가 다수 구성되어 있다.

 이번 아재연합 창립총회는 ‘아시아에서의 헌법재판의 현재와 미래’를 화두로 진행된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재판과 민주주의 및 법치주의 발전, 국제교류의 증대가 헌법재판에 미치는 영향, 아재연합의 역할과 미래라는 세 개의 세션으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아시아의 민주주의·법치주의·기본적 인권 신장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회의에는 러시아를 비롯한 10개 회원국과 함께 오스트리아·인도 등 10개국이 옵서버로 온다. 헌법재판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독일과 베니스위원회 등 12개 국가 및 국제기구는 게스트로 참여한다. 참석 인사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아시아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 헌법재판의 주요 인사들을 아우르고 있다. 세계에서 최초로 헌법재판소를 설립한 오스트리아의 게르하르트 홀징거 헌법재판소장과 베니스위원회의 지아니 부키키오 위원장도 참석한다. 베니스위원회는 유럽 각국의 입법에 관한 헌법적 자문을 하는 유럽평의회 자문기구다. 그야말로 전 세계 헌법재판 전문가들이 헌법재판과 입헌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이번 회의가 갖는 특별한 의미는 헌법재판을 통해 구현된 한국적 입헌주의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소중한 장이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간 정치적 혼란에서 벗어나 새로이 민주주의의 소중한 싹을 키워가고 있는 아시아 각국에 우리 헌법재판소의 성공적 체험을 전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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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