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5대째 내려온 왕실 어의 비법이요? 기본 지키기죠”

고종 어의를 지낸 변석홍 옹의 후손으로,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한의사 변기원 원장이 환자에게 침을 놓고 있다.


강남 한복판에 왕실 어의의 비법으로 처방하는 한의원이 있다. 고종 황제의 어의였던 변석홍 옹에 이어 5대째 가업을 이으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있는 변기원 원장(52)은 “건강을 다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 황제 어의 4대손] 한의사 변기원
고조부가 영동에 세운 ‘제월당’…어릴 적 한약 심부름하던 놀이터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변한의원. 진료실 입구에 낡은 약장이 놓여 있다. 유리관으로 씌워져 한눈에 보기에도 귀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 물건에는 ‘고종 황제 시절 어의를 지낸 변석홍옹이 쓰던 약장’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한의원을 둘러보니 작두와 약탕기 같은 옛 물건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이곳 원장은 변기원씨다. 약장의 주인 변석홍 옹의 4대손으로, 5대째 한의사로 가업을 잇고 있다. 고조부 변석홍 옹은 고종 황제의 어의를 지냈고, 증조부 변영목 옹은 뛰어난 침술로 유명했다. 조부 변상훈 옹은 박정희·노태우 전 대통령의 진료를 맡으며 명성을 떨쳤다. ‘어의 집안’이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는 황제와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던 선조 덕분이다. 아버지 변동섭 옹은 혈맥을 잘 다스려 중풍 치료로 유명했다.



 변한의원의 역사는 충북 영동 비봉산 끝자락에 있는 ‘제월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종 어의를 지내던 고조부가 일제 치하 때 “왜놈의 녹은 받을 수 없다”며 관직에서 물러났고, 영동에 내려와 한의원을 열었다. 1902년 문을 연 한의원 제월당은 이후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오늘날 변 원장까지, 111년째 많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



 변 원장의 어린 시절은 제월당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4학년 때부터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있는 제월당을 찾았다. 소년 변기원에겐 매미 허물(선태)이 장난감이었고, 약재밭과 한약방은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마을 어귀에서 놀다가도 소변이 마려우면 꾹 참으면서 제월당까지 뛰어가 할아버지를 찾았다.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던 어린 남자아이의 소변을 할아버지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약재를 첩에 넣고 봉투에 싸는 일을 돕곤 했는데, 대충 눈대중으로 양을 맞추다가 할아버지로부터 자주 꾸중을 들었다. 작두로 한약재를 자르고, 툇마루에 순번대로 환자를 앉히거나, 처방전을 받아 약 조제방에 갖다 주는 일도 했다. 한의원을 놀이터로 삼던 변 원장이 한의사가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84년 한의대 졸업 후 제월당 옆에 ‘변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열었다. 왕실에서 쓰이던 어의 비법을 바탕으로 한 변한의원의 처방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 환자들을 불러 모았다.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저 ‘기본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고교생 때 아버지를 여읜 변 원장에게 할아버지의 말씀은 교과서였다.



 “할아버지께선 ‘약재를 잘못 쓰면 오히려 환자의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비슷한 효능의 약재, 농약을 뿌려 재배한 싼 약재를 사용해서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거죠.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약탕기와 약절구.


 먼 시골까지 진료를 받으러 오기 힘들다는 환자들이 많아 2005년 서울 강남으로 병원을 옮겼다. 제월당은 현재 약초 재배와 보약의 일종인 경옥고를 제조하는 등 약재 생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변한의원에서 쓰는 대부분의 약재는 4만9500㎡(약 1만5000평)의 제월당 약초밭에서 가져온다. 약초밭은 물론 그 인근에도 절대로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약초 20여 종이 무농약 농법으로 재배되고 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그대로다.



 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는 한의사로서의 자부심을 더해준다. 고조 할아버지에게 하루는 동네 아가씨가 배가 아프다며 찾아왔다고 한다. 두 달 전 우물 위에 떠 있는 대추를 먹은 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환자에게 고조부는 뱀독을 푸는 ‘석웅황’을 처방했다. 뱀독이 퍼져 있던 대추가 원인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복통이라고 하니 모두 소화제를 처방했지만 여러 환자를 진료한 경험을 통해 뱀독이 원인이라는 걸 아신 거죠. 책과 원리로만 진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를 통해 공부하고 발전하는 것이 진정한 의사라는 걸 한 번 더 깨닫게 됐습니다.”



 할아버지는 침을 놓을 때는 돈을 받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한 아이에겐 “나중에 커서 취직한 후 병원비를 갚으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변한의원은 한의사만 대를 잇는 것이 아니다. 환자도 대를 이어 병원을 찾는다. 할아버지에게 진료를 받았던 한 할머니의 아들은 세월이 흘러 변 원장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주말이면 변 원장은 제월당으로 내려가 약재를 돌본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나 노인들에게는 무료로 침을 놓고 진맥을 해준다. “서울서 변 원장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동네 할아버지·할머니가 하나 둘 제월당으로 모여든다. 할아버지에게 침을 맞았던 어르신들은 세월이 흘러 어느 새 쉰을 훌쩍 넘긴 손자 의사에게 허리와 무릎을 맡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왕실에서 쓰이던 어의 비법은 5대째 전수되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변 원장은 전통 한의학에 만족하지 않고 현대 의학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뇌의 불균형’에 의해 나타나는 여러가지 질환이다. 2007년 오픈한 뇌균형 운동치료센터인 ‘밸런스브레인 센터’는 ADHD·틱장애·학습장애 등으로 고통을 겪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한방치료와 더불어 국내 최초 미국 기능성 신경학회와의 기술제휴로 개발된 밸런스 브레인만의 특화 프로그램은 학습장애를 겪는 어린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주고 있다.



 변 원장은 “좌우 뇌의 교류와 뇌의 불균형 등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음양조화’와 일맥상통한다”며 “지금까지 어느 한의사도 끝까지 파고든 적이 없던 한의학의 뇌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변한의원은 과연 6대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변 원장은 “가업을 잇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꼭 대를 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아들 역시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의사가 되겠다고 자연스럽게 결심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아들 준우(20)군은 현재 재수 중이다. 지난 해 한의대에 응시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한의사인 탓에 한의사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다”며 “실력을 더 갈고 닦아 한의대에 진학해 아버지처럼 훌륭한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변 원장은 후배 한의사가 될 아들에게 “선조들의 가르침처럼 의술을 베푸는, 기본을 아는 한의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하현정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