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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암송 1대1 호통 교육 … 제자 고민 들어준 스킨십 시간

계명대 한문교육과 제자들이 20년 전 세상을 떠난 이원주 교수를 위해 묘비를 세운 뒤 12일 제막하고 있다. 졸업생 100여 명이 2000여만원의 성금을 냈다. [안동=권효섭 사진작가]


고 이원주 교수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넘은 스승의 은혜를 잊지 못해 해마다 추모회를 여는 제자들이 있다. 긴 세월이 흘러도 스승을 잊지 못하는 것은 참된 스승의 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승은 강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학생에게 호통을 쳐 눈물을 쏟게 한 엄격한 대학교수였다. 제자들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친 스승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내일 스승의 날 … 계명대 한문교육과 고 이원주 교수



 12일 오전 11시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스승의 날을 사흘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제자 40여 명이 흰 천을 걷어내자 스승의 묘소 옆에 세운 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문에는 ‘문생(門生) 모두를 뜨겁고도 숙연하게 사랑하셨던 거룩하신 우리 스승’이라고 적혀 있었다. 1992년 54세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이 교수를 잊지 못해 제자들이 문집을 내고 스승을 닮은 소나무를 심고 그래도 모자라 이번에는 20주기를 맞아 글을 지어 비석을 세운 것이다.



 스승은 계명대 한문교육과에 17년간 몸담았던 고 이원주(李源周·1939~92) 교수. 제자들은 “가르침은 엄하고 사랑은 넉넉한 선비였다”고 입을 모은다. 제자인 계명대 이종문(59) 교수는 “『논어』 수업 때는 학생 모두가 한 사람씩 연구실을 찾아 선생님 앞에서 배운 내용을 외워야 했다”며 “더듬거리면 호통을 쳐 연구실 밖에서 눈물을 쏟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학생들은 스스로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논어』를 마침내 줄줄이 외웠다. 마지막 장까지 끝내지 못하면 방학을 미룰 정도로 수업에 철저했다. 80년 계엄령 땐 학생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 공부를 독려하기도 했다.



 강의에서 엄격했던 스승은 평소 다정했다. 암송 면담 때 학생의 고민이 무엇인지 일일이 물어보고 수업 후 학생들과 어울려 술잔과 유머를 주고받기도 했다. 고인은 뇌종양으로 항암치료를 받을 때도 제자들에게 “연부역강(年富力强, 젊고 왕성)할 때 어울려 술 한잔 하고 가시라”며 특유의 유머를 잊지 않았다.



 철저한 가르침 덕분에 졸업 후 탄탄한 한문 실력을 쌓은 제자들은 교수(10여 명)와 한문교사(100여 명)로 대거 진출했다. 제자인 계명대 김남형(61) 교수는 “질러가는 좁은 길이 있어도 언제나 큰 길로 돌아가는 선비의 몸가짐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며 “지금도 스승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게 사무친다”고 말했다.



 스승이 투병 끝에 홀연히 떠나가자 제자들은 모교에 몸담은 교수들이 중심이 돼 추모사업을 시작했다. 제자들은 2주기에 먼저 유고집을 발간키로 하고 모금에 들어갔다. 성금(3000만원)은 유고집을 내고도 남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제자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월이 되면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20년이 지나 올해는 묘비를 세우겠다며 또다시 모금을 했다. 이번에도 제자 100여 명이 모두 2000여만원을 보냈다. 김 교수는 “추모사업을 하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돈이 남았다”고 말했다. 스승의 사랑이 낳은 기적이다. 유족 대표 이동후(75)씨는 “그 스승에 그 제자”라며 “20년간 한결같이 은혜를 잊지 않는 제자들이 더 훌륭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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