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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5세 명연설, 아쟁쿠르 전투 대승 이끌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여든 하고도 일곱 해 전에”로 시작하는 연설이 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이 전쟁터에서 죽은 장병들에게 봉헌식을 올리면서 한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이 연설에서 링컨은 당시의 봉헌식이 전투에서 숨진 병사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이 땅에서 죽지 않도록”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티즈버그 연설은 미국 남북전쟁이 벌어지던 1863년 11월 19일 링컨이 방문한 현지의 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행해졌다. 불과 2분간의 짧은 연설, 글자 수는 원문으로 266단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동양은 ‘글’을, 서양은 ‘말’을 중시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명문(名文)’이 발달했고, 서양에서는 ‘명연설’이 발달했다. 때에 맞는 멋진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 힘이 있다. 연극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영국 왕 헨리 5세는 프랑스군과의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에서 병사들의 마음을 빼앗은 멋진 연설로 패색이 짙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유명 화가 저스틴 거버가 그린 아쟁쿠르 전투 상상도다. 프랑스 군대의 공격에 맞서고 있는 영국왕 헨리 5세 등의 모습이다. 헨리 5세는 전투에 앞서 연설을 통해 영국군의 사기를 끌어올려 6배 병력의 프랑스군을 무찔렀다.

살아남아 귀향하면 최고 자리에 서게 될 것

“우리는 적고, 우리의 행복은 작으나, 우리는 형제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헨리 5세』의 유명한 구절이다. ‘성 크리스핀의 날의 연설’이라고 불리는 이 연설은 영국인의 우상 헨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 직전에 한 것이다. 아쟁쿠르 전투는 백년전쟁의 전투 중 하나로 1415년 8월 25일 금요일(성 크리스핀의 날) 북부 프랑스의 아쟁쿠르에서 벌어졌다.

헨리 5세의 영국군은 궁수(弓手)보병 8000명과 중기병 2000명의 규모로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나 전염병과 500㎞의 긴 행군으로 인해 병력은 6000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를 맞은 프랑스군은 샤를 달브레의 지휘하에 3만6000명으로 영국군의 6배에 이르는 병력이었다.

프랑스군은 중장기병과 중장보병 그리고 우수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투는 아쟁쿠르 마을 근처 숲 사이의 개활지 좁은 통로에서 벌어졌다. 8월 24일 전투 전날에 때마침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흠뻑 맞은 영국군은 지쳐서 사기가 떨어졌고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겁에 질려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영국군 귀족들은 만약 그들이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힐 경우 보석금을 내 풀려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도를 했다고 한다. 헨리 5세가 그런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그러한 행운이 없었다. 그래서 막강한 적과의 일전을 앞두고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이때 그들 앞에 헨리 5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역사를 바꾼 위대한 연설을 했다. “우리는 수적으로는 열세다. 게다가 지쳤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제군들은 나와 함께 피를 흘려왔기 때문에 내 형제가 된 것이다. 영국에 남은 남자들은 지금 잠자리에 누워 여기에 있지 못해 안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함께 싸운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그들은 남자인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살아남아 무사히 귀향하는 자는 오늘을 기념하는 그날에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나를 따라 영국의 영광을 위해 싸우자!”

연설을 들었던 영국군은 주먹을 힘껏 쥐었고 더 이상 겁에 떨지 않았다. 그들은 밤을 새워 목책을 세우고 일전을 준비했다. 당시 전황을 결정한 것은 지형이었다. 좁은 전장은 우거진 수풀로 가득 얽혀 있었고, 이는 영국군에게 유리했다. 1000명의 영국 중무장 부대는 4열로 밀집해 있었다. 목책 뒤는 장궁병(長弓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랑스군은 영국의 중무장 부대보다 현저히 많았지만 그들은 영국군의 측면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좁은 지형 탓에 전군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의 중장기병과 보병이 공격을 했다. 수풀지대 때문에 측면 공격이 불가능했다. 이어서 목책 돌파를 시도했지만 영국군은 불화살로 공격했다.

이때 프랑스 기병의 말들이 놀라 진군하는 자기 편 보병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면서 보병들은 분산되고 짓밟히고 말았다. 프랑스군 중무장 부대의 문제는 25㎏이나 나가는 무거운 갑옷이었다. 거기에다 두툼한 투구를 썼는데 화살이 얼굴에 박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투구를 바짝 내려썼다.

그러다 보니 겨우 숨 쉬는 구멍만 나 있어 앞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이 상태로 비 온 뒤의 두꺼운 진흙탕에 푹푹 빠지며 겨우 한 발자국씩 옮겨야만 했다. 이들이 느릿느릿 가까이 오자 영국의 장궁병들은 ‘끔찍한 화살의 우박’을 쏟아 부었던 활을 내려놓고 칼과 도끼로 백병전에 돌입했다.

백병전은 약 세 시간 정도 이어졌다. 프랑스군은 투구 속에서 발생하는 열과 산소의 부족 때문에 저절로 넘어갈 정도였다. 결국에는 영국군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무기조차 들기 어렵게 되었다. 기력이 없어진 프랑스의 중무장 보병대는 땅에 쓰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프랑스군의 2열이 전투에 참여했으나 그들 역시 순식간에 쓰러졌는데, 좁은 지형은 여분의 병력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했다.

이 전투에서 헨리 5세는 그의 막내 동생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가 배에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자 친위대를 이끌고 프랑스군 진영을 돌파하며 험프리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진두에서 싸움을 이끌기도 했다. 결국 헨리 5세는 프랑스군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면서 승리했다. 이때 헨리 5세는 몇몇 유명한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몇천에 달하는 프랑스 포로 전원에 대한 학살을 명령했다.

이들이 전장에 내버려진 무기들로 다시 무장할지도 모르고, 만약 그럴 경우 지친 영국군이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자비한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때 3개의 영국 대장기 주변에 사람의 키만큼 시체가 쌓였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12명의 귀족, 1500명의 기사, 약 4500명의 병사가 전사했으나 영국군의 손실은 적게 잡았을 때 112명으로 극히 미미했다. 믿기 어려운 완벽한 승리였다. 전사연구가 앤 커리는 “아쟁쿠르 전투는 헨리 5세의 신화”라고 극찬했다.

마음·체력·사기·변화 다스려야 승리

손자병법 군쟁(軍爭) 제7편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치심’(治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승패와 직결된다. 아군에게는 마음을 잘 다스려 동요가 없도록 하고, 적의 마음은 흔들어서 어지럽혀야 한다. 헨리 5세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병사들에게 용기를 준 연설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

둘째는 ‘치력’(治力)이다. 체력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아군의 체력은 잘 보존하되 상대적으로 적의 체력은 고갈시키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군의 중무장 부대는 갑옷의 무게 때문에 체력전에서 이미 패했다. 흔히 말하는 ‘체력은 국력’은 타당하다.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운동하고 체력을 관리하는 것은 적어도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에게 있어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체력이 약하면 정신에도 문제가 생겨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셋째는 ‘치기’(治氣)다. 사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아군의 사기는 높이고 적의 사기는 꺾는 것이다. 사기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마지막으로 ‘치변’(治變)이다. 상황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을 직시해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실패한다. 이렇게 치심·치력·치기·치변을 ‘사치’(四治)라고 하는데, 마치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며 서로 긴밀하게 물려 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체력이 고갈되고, 동시에 사기가 떨어지며,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네 가지 다스림의 시작은 마음을 다스리는 치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치심에 실패하면 나머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을 잡는 노력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은 미사여구로 잘 다듬은 원고나 현란한 말솜씨에서 나오지 않는다. 연설하는 사람이 정말로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마음’을 말하고 있다고 믿을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말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한 천재적으로 활용했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런 말을 했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말더듬이도 대중을 선동할 수 있다.”

말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장자의 말처럼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할 수 없다. 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말 잘하는 사람이 되자. 소포클레스가 언급한 것처럼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별개다. 잊지 말자. 내면을 움직이는 힘은 ‘진심’이라는 사실을.

노병천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장 1919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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