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엄마 이혼후 암으로 세상 뜨자 친아버지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2008년 돌연 생을 마감했던 최진실. 그녀의죽음은 비극적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사회는 그 죽음으로 야기된 새로운 쟁점을 안고 있다. 바로 내년 7월 시행되는 ‘최진실법(민법 개정안)’이다. 그녀의 사망을 계기로 친권 자동 승계조항이 대폭 손질됐다.

기존 민법은 이혼한 부모 중 한쪽이 사망할 경우 생존한 사람이 자동으로 친권을 갖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개정된 민법은 이 경우 아이의 행복을 위해 법원이 심사를 통해 친권자를 정하도록 했다. 생존한 부모가 될 수도 있고 할머니가 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유진(가명·16)이의 사례를 통해 최진실법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 일부를 각색했다.


유진(16)이는…

현관문을 나서기 전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 사진을 보며 속으로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엄마는 틀림없이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겠지. 신발을 신으면서 아저씨가 챙겨 준 도시락을 들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법원에서 온 가사조사관이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를 두고 아빠와 외할아버지가 소송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닌데, 왜 내가 누구랑 살아야 할지를 두고 아빠와 외할아버지가 싸우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빠는 느닷없이 왜 나와 살고 싶은 걸까.

아빠와의 기억은 사실 별로다. 아빠는 엄마와 늘 다투곤 했다. 학원을 운영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아빠는 매일 늦게 집에 들어왔고 엄마는 속상해하는 일이 잦았다. 엄마도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난 늘 외할아버지네와 우리 집을 오가며 놀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어느 날 저녁인가엔 아빠·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여자가 생겼느냐”고 묻는 엄마를 아빠는 거세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말릴 새도 없이 아빠의 손찌검이 이어졌다. 엄마는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나는 무서워 따라 울었다. 어린이날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아빠가 집에 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와 헤어졌다고 했다. 엄마는 학원 일을 계속했고, 나는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이혼한 뒤 엄마가 아저씨를 만난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엄마는 아빠와 헤어진 뒤로 성당엘 다녔다. 엄마는 “성당에서 만난 아저씨가 착해서 좋다”고 했다. 아저씨는 밤늦게까지 PC방 일을 했지만 늦은 밤 수업을 마치고 오는 엄마를 태우고 집에 왔다.

아저씨가 우리랑 살기 시작했지만 아저씨한테 ‘아빠’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배신 같았다. 2008년부터는 엄마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았다. 아저씨는 쉬쉬했지만 엄마는 내게 혈액암이라고, 죽을 수 있는 병이라고도 했다. 엄마가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아저씨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저씨가 좋게 보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2009년 내가 6학년이 됐을 때 헤어져 살던 친아빠가 어린이날 기념으로 내게 휴대전화를 사 줬다. 아빠가 휴대전화로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남자아기였다. “유진이 동생이야, 예쁘지?” 아빠의 문자는 정말 최악이었다. 나는 아빠가 싫었다. 엄마는 아픈데, 새 여자를 만나 동생까지 낳았다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아빠를 보는 일이 늘었다. 엄마는 학군 좋은 강남에서도 유명한 아빠네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게 좋겠다고 했다. 친구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가끔 아빠랑 함께 할아버지·할머니랑 놀러 가기도 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무균실에 있는 엄마를 돌본 건 아저씨였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학원을 가야 해서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은 힘들었다. 아저씨는 “엄마가 유진이를 보고 싶어 해 치료도 잘 받고 있다”고 했다. 엄마의 병이 심해지고 있다는 걸 안 건 지난해였다. 지난해 2월 아저씨가 엄마를 보러 가자고 했다. 아저씨 손을 잡고 엄마 병실을 찾았지만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는 하늘나라로 갔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자 외할아버지는 법원엘 갔다. 법 때문이라고 했다. 여태껏 엄마가 나를 키웠는데,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친권이 아빠에게 자동으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아빠랑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외할아버지랑 아저씨랑 이대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사실, 난 새엄마랑 새로 태어난 남동생이랑은 같이 살고 싶지 않다.

외할아버지(71)는…

유진이 어미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 서른 넘어 김서방(51)과 결혼해 낳은 유진이가 겨우 여덟 살일 때 이혼도장을 찍었다. 바람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 손찌검까지 하는 김 서방과 이혼하면서 마음에 졌던 응어리가 암덩이가 됐던 게다.

유진이 어미는 학원 일을 억척같이 계속했다. 김 서방이 매달 50만원의 양육비를 보내왔지만 일을 해야 유진이 대학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딸이 걱정돼 내가 있으니 돈걱정은 하지 말라며 유진이 학비 대비용으로 상가를 사 줬는데, 딸이 암으로 세상을 떴다. 아직 유진이가 어려서 상가 관리를 할 수도 없고, 김 서방이 유진이 몰래 상가를 팔아 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이미 새살림을 시작해 애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진이는 내가 키우는 게 맞다 싶었다.

유진이 어미를 잃고도 PC방을 하면서 도시락까지 싸주며 지극정성으로 유진이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박 서방을 위해서라도 친권은 찾아오는 게 도리인데 법이 문제다.
 
친아버지(51)는…

욱하는 성격을 못 참고 손을 댔던 내 탓 때문에 2004년에 유진이 엄마와 이혼을 했다. 하지만 그 뒤 서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유진이 엄마가 혈액암으로 세상을 뜬 건 내 책임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아이 아빠로서 유진이를 돌보는 데엔 게으르지 않았다. 이혼을 한 뒤에도 학원이 어려웠던 때를 빼고는 꼬박꼬박 양육비를 부쳤다. 위자료는 아니었지만 1억5000만원짜리 전셋집도 주고 나왔다.

유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날엔 휴대전화도 사 주고 친가 할아버지·할머니와 같이 놀이공원에도 가기도 했다. 내년에 법이 바뀐다지만 현행법상으론 아이를 키우던 유진이 엄마가 사망하면 친권이 아빠인 나에게 오는 게 맞다고 들었다.
 
법원의 판단은…

유진이 외할아버지와 아빠의 다툼은 어떻게 됐을까.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외할아버지의 손을 들어 아빠의 친권 상실을 판결했다. 법원은 “유진이가 약 7년 이상 엄마와 살며 외할아버지, 새아빠와 강한 심리적 유대를 형성하고 있고 유진이가 엄마의 사망으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의 생활환경에 만족하고 있다는 유진이의 개인 의사도 비중 있게 판단했다.

법원은 “2013년 시행되는 개정 민법이 어느 한쪽 부모의 사망으로 친권이 당연히 부활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 관점에서 친권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진이를 둘러싼 법정공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진이 아빠는 항소했고, 법 시행 전이라는 점을 감안해 서울고등법원은 친권은 유진이 아빠가 갖되 양육권은 외할아버지가 갖도록 하는 내용의 조정을 했다. 최진실씨의 사망 후 아이들의 아빠인 조성민씨가 친권을 갖지만 양육은 외가에서 맡도록 한 것과도 동일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사회엔 이혼 증가의 여파로 친권, 양육권, 양육비를 둘러싼 가족 간의 2차 다툼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친권과 양육권, 양육비 등 자녀 관련 상담 건수가 전년 대비 1.7배(친권과 양육권)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권, 양육권 민법상 친권은 아이를 양육할 권리와 자녀의 재산상 권리를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하고 있다. 양육권은 부모가 이혼 시 아이를 기를 권리만을 인정한다. 따라서 친권이 양육권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