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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회사 구할 제2의 스티브 잡스는 누구?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영국 작가 J R 톨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 3부작 마지막 회 제목은 ‘왕의 귀환’(Return of the King)이다. 돌아온 왕 아라곤(Aragon)은 적의 공격으로 사면초가인 곤도르 왕국을 지켜낸 뒤 환호 속에 왕좌에 오른다. 요즘 재계에는 ‘오너의 귀환’이 잦다. 잃었던 지분을 되찾아 오너십(경영권)을 회복하거나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더 지는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명수 한국경영사학회장(인하대 교수)은 “애플 스티브 잡스처럼 창업자나 오너가 경영에 직접 간여해 효과를 낸 경우가 적잖다. 오너 전횡에 관한 우려도 있지만 책임 있는 빠른 의사결정이 어려움에 처한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시적인 의사결정이나 실적도 중요하지만 오너가 직접 챙기는 것 자체가 책임경영과 사내 긴장된 분위기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가운데)이 올해 초 경기도 광주 태화산으로 신입사원들과 함께 등산을 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금호아시아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산업ㆍ금호타이어 증자를 마치면 다음 달 사실상 오너십을 회복한다. STX그룹 강덕수 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2년 만에 STX팬오션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직전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한 박용현 회장도 3년 만에 두산건설 사내이사로 다시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최근 인수한 현대건설의 등기임원이 됐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2세 조현아·조원태 전무를 사내이사로 새로 선임했다. 현대차 그룹의 2세 경영자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제철의 등기이사가 됐고 대한전선의 대주주인 설윤석 부회장은 사장으로 직급을 낮추면서 대표이사를 맡았다.

사연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너의 귀환과 전진배치의 배경에는 ‘위기 극복’과 ‘기업 육성’이 있다. 오너경영이냐 전문경영인 체제냐,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책임경영 측면에서는 오너경영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박삼구 회장은 근래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올해 신입사원 신년 산행을 시작으로 아시아나항공ㆍ금호고속ㆍ금호건설ㆍ금호타이어 등 그룹 전 계열사의 신년 산행에 모두 참석했다. 그는 여러 자리에서 “올해는 기필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서 졸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견위수명은 위기가 닥쳤을 때 목숨 바쳐 대응한다는 뜻이다. 해외 출장도 예년 월평균 2회에서 올해는 월평균 3회로 늘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1월 금호석유화학 지분 10.25%를 모두 팔아 4000억원가량을 확보했다. 이 돈으로 오는 21일과 다음 달로 각각 예정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해 10%대씩 지분을 확보한다.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의 박 회장 지분이 2010년 11월 감자로 대부분 사라진 뒤 2년 만에 그룹의 실질적인 최대 주주로 복귀하는 것이다.

물론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최대 주주는 아직 채권단이다. 하지만 박 회장의 지분 확보를 오너 귀환으로 보는 시각은 분명하다. 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조직이 좀 움츠러들었던 게 사실인데 이번 박 회장 복귀로 구심점이 생겼다.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정몽구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STX 강덕수 회장, 두산 박용현 회장이 계열사 등기임원에 오른 것은 건설업ㆍ해운업 시황의 어려움과 관련이 있다. STX팬오션은 지난해 179억원의 영업손실을, 두산건설은 269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수주액이 전년 대비 6조원 줄어든 12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현대건설 인수 후 “현대건설을 자동차ㆍ철강과 함께 그룹의 3대 성장동력 축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무색하게 만들 만한 실적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의 변성진 애널리스트는 “그룹 총수가 등기임원에 오르면 공사 수주를 비롯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찍이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과 LG전자의 구본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위기다. 변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서울 서초동 신사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록적인 영업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 10월 위기의 LG전자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구본준 회장은 ‘독한 LG’를 외치며 체질 개선과 연구 역량 강화를 주도해 왔다. 이 회사는 올 1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 12조2279억원, 영업이익 4482억원을 올려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강덕수 회장]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11년 특별판에서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는 오너가 직접 나서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낸다’는 조사 분석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빠른 결단을 통해 급변하는 시장과 기술 트렌드에 대처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략적 접근을 하기 좋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 복귀 사례가 타산지석이다. 애플 설립자인 잡스는 경영진과의 갈등 속에 1985년 대표에서 물러났다가 회사가 파산 직전 위기에 빠진 97년 복귀했다. 이후 아이팟ㆍ아이폰ㆍ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애플을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업체로 키워놓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델컴퓨터 설립자인 마이클 델도 2004년 최고경영자(CE0)에서 물러났다가 2007년 복귀해 회사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오너가 돌아왔다고 다 잘되는 건 물론 아니다.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은 물러났다가 CEO로 2007년 복귀했지만 잘못된 경영 판단 등으로 이사진과 갈등을 겪다가 올 초 다시 물러났다.

올해 기업집단 총수와 오너 2ㆍ3세가 등기 임원에 많이 오른 것에 대해서는 등기이사의 책임 한도를 제한하는 개정 상법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시행된 새 상법은 이사의 책임범위를 직전 연도 보수의 6배 이내(사외이사는 3배)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실패 리스크를 줄여줘 좀 더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치게 하자는 취지다. 외부 전문경영인 영입이 쉬워지고 투자를 더 신속히 결정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547개 가운데 34%인 185개사가 이사 책임을 제한하는 근거를 정관에 새로 담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자산 1조원 이상 국내 기업 76개사 가운데 65개사가 이사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관을 고쳤다. 현대차ㆍ현대제철ㆍ대한항공ㆍ한진해운ㆍSTX팬오션ㆍCJ제일제당 등이다. 김선웅 소장(변호사)은 “올해 주총에서 등기 임원에 오너 일가가 많이 오른 데는 개정 상법과 경영권 승계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상법 개정에 따른 정관 변경일 뿐이다. 사외이사의 책임을 덜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이원선 조사본부장은 “등기 임원이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임원 역할을 하면 이전 상법에서도 책임을 물 수 있었다.

개정 상법도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우는 책임 제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책임을 지는 자리에서 경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염태정 기자 =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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