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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맞수 패션을 예술로 이끈 '쇼킹’ 디자이너

1920년대가 코코 샤넬의 시대였다면 1930년대는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1890~1973)의 시대였다. ‘패션계의 초현실주의자’로 불렸던 이탈리아 출신의 스키아파렐리는 당대 샤넬의 최고 라이벌이었다.불우하게 자란 샤넬이 단순하고 우아한 스타일에 매달린 데 반해 귀족 출신인 스키아파렐리는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두 사람은 늘 비교됐지만 샤넬은 “그 옷 만드는 이탈리아 아티스트있잖아”라면서 무시하는 투로 말하곤 했다. 숨길 수 없는 질투였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한 사람은 불멸의 아이콘이 됐고, 또 한 사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키아파렐리는 1890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로마대학의 학장을 지냈고, 삼촌은 화성의 거대한 홈(canals of Mars)을 발견한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였다. 그는 보수적인 명문가와는 맞지 않았던 듯, 대학 시절 관능적인 시집을 펴내 가족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갔지만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은 금세 끝이 났다.

파리로 건너간 그는 패션 디자인을 선택했다. 교육받은 적은 없지만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스웨터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트롱프뢰유’는 실물로 착각할 만큼 정밀한 그림을 뜻하는 말. 스키아파렐리는 눈속임을 일으키는 리본 패턴을 스웨터 위에 그려 성공을 거뒀다. 의상에 예술적 기법을 차용한 그는 예술가와 교류하고 작업하며 패션 디자인을 예술적 영역으로 이끌었다.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만 레이,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다다이즘·초현실주의 작가가 그들이었다. 특히 달리와는 여러 차례 작업했다. 이 중 커다랗고 붉은 가재가 치마에 그려진 ‘랍스터 드레스’는 월리스 심슨 부인이 즐겨 입었다. 이 외에도 하이힐 모양의 모자, 아스피린을 엮은 목걸이 등 자유롭고 기발한 디자인으로 그는 상류층의 지지를 얻었다.

전성기를 누리던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국으로 갔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왔지만,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뉴룩’이 휩쓴 패션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1954년 은퇴했고 자서전을 쓰며 말년을 보냈다. 자서전 제목은『쇼킹 라이프(Shocking Life)』, 사람들은 그가 즐겨 쓰는 색깔을 ‘쇼킹 핑크’라고 불렀다. 세상에 충격을 주고자 했던 스키아파렐리는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뜻한 바를 이뤘다.

40년 전 세상을 떠난 그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 고(故)알렉산더 매퀸 전시로 화제를 모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스키아파렐리 & 프라다 : 불가능한 대화(Schiaparelli & Prada : Impossible Conversations)’ 전시를 10일 개막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여성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미우치아 프라다는 의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만남을 갖는다. 전시는 8월 1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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