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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이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는 북한과 소말리아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지난해 조사 결과다. 서유럽과 미국 등 민주 국가들은 비교적 맑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부패가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부패지수는 1996년 5.02, 98년 4.2, 2000년 4.0 등으로 조사가 시작된 이래 하향 추세다. 10점 만점이 가장 깨끗한 나라다. 5.6으로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4년 연속 떨어져 5.4에 머문다. 5점은 ‘절대 부패’를 갓 넘어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이 6.97이다.

부자는 부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여겨져 왔다. 곳간에서 인심 나니까. 생활에 여유가 있는데 굳이 검은돈에 손을 내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돈의 한계효용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매우 가파르게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부자들을 참모로 낙점한 이명박 대통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믿음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부패에 연루됐거나 의혹을 받는 MB 정부의 부자들을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여론조사론 한국 부자의 기준이 30억원이다. 그런데 MB 정부 초기 내각의 평균 재산은 31억원이었다. 청와대 수석은 35억원인데 대통령을 포함하면 65억원에 달했다. ‘강남 부동산 자산가’를 줄인 강부자 내각, 강부자 비서실로 불렸다. 최근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신고 재산이 70억원을 넘는다. 비슷한 시기 일본 간 나오토 내각의 평균 재산은 3286만 엔(약 4억6000만원)이다. 70억원 자산가를 포함해 권력 실세에게 건네졌다는 뇌물 액수는 6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는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는 기막힌 비난까지 나온다.

제도를 정비하면 사회가 맑아질 것이란 기대도 무너졌다. 부패방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다. 이 법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체크하고 매년 국가기관의 청렴도를 측정한다. 일부 부처는 소속 공무원이 지인들과 값비싼 저녁밥을 먹는 것도 금지했다. 청와대는 아예 골프를 끊었다. 그런데도 행동강령 위반으로 적발된 공무원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8년 764명, 2009년 1089명, 2010년 1436명이다. 무서운 사실은 검찰·경찰·감사원·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의 부패 사건이 줄지 않는다는 거다. 스폰서 검사에 룸살롱 황제,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이 이어지자 “나라가 온통 썩었다”는 대통령의 개탄까지 나왔다.

그래서 국회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마련 중이다. 공직자들이 부패에 연루될 소지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거다. 정부는 공무원 의식교육을 위해 청렴교육연수원을 만든다고 한다. 부패는 사회를 멍들게 하는 원흉이다. 좀 더 강력한 반(反)부패 입법이 필요하다는데 머뭇거릴 이유란 없다. 공직자 교육도 물론 서둘러야 한다. 시민사회의 청렴운동은 더 활발해져야 한다. 모두 필요한 일들이다.

그런데 반부패 의지를 다지는 19대 국회가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권력형·정치형 집단부패 대책이다. 공직자 개인의 부패는 적발해서 처벌하면 된다. 구조적 부패라면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하지만 부자를 발탁해도, 제도를 바꿔도 사라지지 않는 건 끼리끼리 봐주고, 밀어주고, 해먹는 한국형 연줄 부패다. 깊은 바닥엔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교회 출신이란 고소영의 울타리가 있다. ‘끼리끼리’ 정치판의 어두운 그림자다.

연고(緣故) 인사의 중심에 섰다가 연줄의 덫에 갇힌 사람은 최 전 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만이 아니다. 학교와 지역만 다를 뿐 한국의 역대 정권엔 도돌이표다. 대통령 후보나 당선자들은 한결같이 지연·학연·혈연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우리가 남이가’ 정신 앞에 예외 없이 무너졌다. 그러니 이젠 정치가 앞장서 ‘우리는 남이다’를 선언해야 할 때다. 부패를 막겠다는 새 법이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정신이다.

그러자면 먼저 끼리끼리에 갇힌 연고 선거와 지역당의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 광역선거구, 석패율제, 국민참여경선 등으로 선거법과 정당법을 정비하면 가능한 일들이다. 새로 출발하는 19대 국회 앞엔 재벌개혁, 교육개혁, 국방개혁 등 시급하고 중요한 국가 어젠다가 여럿이다. 그래도 정치개혁이 가장 앞자리에 서야 한다. 총선이 시작되어도 선거구조차 만들지 못하는 악순환은 18대 국회로 끝내야 한다. 윗물이 맑아져야 아랫물이 맑아진다. 한국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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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