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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더께 그대로 홍콩 옛 건물의 드라마틱한 변신

1 홍콩의 전경.2, 3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화약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보수해 갤러리와 소극장으로 사용 중이다.
2015년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18년이 되는 해. ‘18’이라는 말이 뜻하는 ‘부자’라는 의미를 차지하기 위해 지금 홍콩 시내 곳곳에서는 변신의 용틀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최첨단 고층 건물 틈바구니마다 시간의 더께로 온몸을 장식한 건물들도 여전히 부지기수다. 모두 싹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릴 수도 있으련만, 홍콩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 깨끗하게 밀어버리는 대신 그들은 겉을 다듬고 속을 고친다. 지난달 26일 ‘건축가와 함께하는 홍콩 도보여행’은 19세기 전통에서 21세기를 호흡하고 있는 홍콩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느껴보는 자리였다.

민·관이 한뜻으로 옛 것 지키기
홍콩 시내 스터브스 거리에는 1937년 지어진 킹인레이(京賢里·King Yin Lei)라는 전통 건축물이 있다. 건물주는 현대식 건물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공사를 시작했지만 곧 굴착기를 멈춰야 했다. 시민들이 항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 소유라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데 함부로 부술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홍콩 정부는 시민의 편을 들어주었다.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샀다. 홍콩 건축가협회 도미닉 람 쾅키(Dominic Lam Kwong-Ki) 회장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전통 옹호와 이를 귀담아 듣는 정부의 자세가 홍콩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완차이 블루하우스(Blue House)도 그런 장소 중 하나다. 블루하우스는 1960년대 서민공공주택이다. 이 지역에 재개발 붐이 일었을 때 시민들은 적극 반대했다. 겉 모습은 여전히 옛날이되 속은 가정집으로 약간의 보수공사만 하고 살고 있다. 주민들은 1층을 생활전시관으로 꾸몄다. 이곳을 찾는 이방인들에게 홍콩의 어제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홍콩 정부 역시 옛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건축물을 최대한 고치지 않고 유지 보수하겠다는 조건을 달아 정부 소유의 건물을 재단이나 사업자에게 임대해 주기도 한다. 이 경우 임대료도 무척 저렴하다. 아시아의 문화를 알리고자 미국 록펠러 3세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재단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홍콩 센터는 이렇게 정부의 허가를 받고 화약창고를 보수해 지난 2월 개관했다. 화약 보관의 특성상 습기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고 건물에는 창이 없었는데, 이는 극장과 갤러리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필요하면 건물 용도를 바꾸기도 한다. ‘The Pawn’(전당포라는 뜻)은 1888년 지어진 전당포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동안 비어 있던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활용하겠다며 사업주가 영업계획서를 제출했다. 물론 건축물의 유지 보수 조건이다. 너무 낡아 위험한 것들만 교체하고 옛것을 최대한 살렸다. 2층에는 문장으로 패턴을 만들기로 유명한 홍콩 작가 창 킨와(Tsang Kin Wah)의 작품도 아트 월로 전시했다.

8 삼국지 딤섬.
4 1960년대 지어진 서민공공주택 ‘블루 하우스’.5 전당포 레스토랑‘The Pawn’.1888년 지어진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6 옛 다방을 재연한 스타벅스.7 1937년 지어진 전통 건축물 ‘킹인레이’.8 삼국지 딤섬.
갤러리 된 화약고, 레스토랑 된 전당포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들은 젊은 홍콩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홍콩의 아이덴티티를 알리는 것을 기업의 모토로 삼고 있는 생활잡화 브랜드 GOD(Goods of Desire)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홍콩의 전통 DNA를 자사 제품에 세련되게 결합했다. 또 한발 더 나아가 유형의 제품에서 무형의 공간으로 그 DNA를 확장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와 협업해 두 곳에 홍콩식 스타벅스를 선보였다. 그중 두들 스트리트에 있는 곳은 옛 다방을 재현한 곳이다. 공간을 두 부분으로 분리해 한쪽은 1960~70년대 빙샷(Bing Sutt)이라는 홍콩 전통 다방으로, 한쪽은 현대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옛날 홍콩의 부자들은 개를 산책시키듯 새를 키웠다고 한다. 이들은 오후 티타임 때 빙샷에 나와 새에게 햇빛도 쬐어주고 먹이도 주며 자신은 차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당시 사용하던 테이블과 의자, 새장 등을 설치하고 생활용품들로 공간을 꾸몄다. 스타벅스 입구 옆 계단에는 홍콩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진짜 가스등이 있는데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다. 입구부터 내부까지 홍콩의 역사 한복판 속에 있는 기분이다.

전통 음식도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다. 홍콩 아이들은 대표 음식인 딤섬을 할머니들이나 먹는 고루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퍼스타 시푸드 레스토랑(Super Star Seafood Restaurant)이 착안한 것은 캐릭터 딤섬이다. 딤섬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추석에 먹는 전통과자 월병은 GOD의 Bum시리즈(영어로는 ‘엉덩이’, 광둥어 발음으로는 ‘달’이라는 뜻)로 변신해 젊은이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GOD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홍콩의 젊은층은 월병을 먹는 용도보다는 명절을 기리는 의미로 구매한다. 지금은 먹는다는 의미보다 선물로서의 의미가 크다. 매년 홍콩에서 판매되는 월병은 4000만 홍콩달러(약 516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중국 대륙시장 판매량의 5%에 달하는 것으로 홍콩에서 상당히 많은 양이 소비되고 있다. 월병은 개당 5위안(900원) 정도지만 점차 고급 선물로 변해 800위안까지 하기도 한다. 외국 기업도 월병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Bum시리즈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절반이 외국인인 것은 홍콩의 문화를 재해석해 전통을 알리는 데 일조한 GOD의 전략이 상당 부분 성공했음을 뜻한다. 이렇게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 정부의 지원, 디자이너들의 열정이 합쳐져 홍콩의 전통은 많은 변화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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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