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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동생 김연아도 이젠 성인이랍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신조어들을 보면 그 뜻을 풀이하기 민망할 정도로 폭력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있다. ‘까방권’이란 말인데, ‘까임(비난) 방지 권한’이란 뜻이다. 남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류인 인터넷에서 현역 군 입대나 기부, 공헌이 큰 스타들에게는 비난을 보류하는 ‘까방권’이 발급된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여유와 배려가 있는 말로 보여 좋다. 온라인에서야 말뿐이지만, 몇 년 전 발레리나 강수진은 ‘무릎팍 도사’에서 자신이 실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법적인 ‘면책특권’을 받는 예술가 지위를 얻었다고 밝혀 이 까방권이 법적으로도 보장될 수 있음을 알려줬다.

피겨스타 김연아가 올림픽 영웅이 되었을 때, 인터넷에서는 ‘평생 까방권’을 줘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2년 만에 까방권은커녕 김연아는 특별 까임권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이다.

지난 주말 중계된 김연아의 아이스쇼는 참 특별했다. 해마다 김연아는 아이스쇼를 해왔지만 올해는 시즌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채 열리는 첫 쇼였다. 9개월 만에 보는 그가 살이라도 찌거나 경기력이 확 떨어지거나 해서 실망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걱정을 한 방에 날리듯 최근 갈라쇼 중 가장 멋진 쇼를 보여줬다.

사실 팬의 입장으로서는 아무리 쿨한 척해도 갈라쇼는 대회의 부속물일 뿐이며 여전히 그녀가 싫다고 해도 대회에서 메달을 따야 뭔가 완성될 듯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쇼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고, 팬의 입장에서도 처음으로 이제 매년 이런 쇼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감흥을 나누려고 들여다본 인터넷에서는 그 많은 아름다운 경기 장면 중에서도 유독 점프 실수 장면을 메인 화면에 올려놓고 있었고, 예의 ‘돈만 아는 돈연아’ ‘스포츠 선수 본연의 자세를 잃고 쇼만 하는 연예인’이라는 비난이 주를 이루었다. 게다가 최근 나온 맥주광고에 대한 비난까지 겹쳐, 그 내용대로라면 김연아는 돈만 알고 운동은 내팽개쳐 두며 사회적으로 청소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제 인물로 보였다.

김연아가 유난히 전국민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르는 부와 명예를 누렸으므로 거기에 걸맞은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선수생활 초기부터 기부를 해왔고, 금메달도 땄고, 선수생활 중에도 국가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한 김연아다. 이 정도면 ‘까방권’을 얻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언제까지 ‘다시 한번 금메달’과 불철주야 운동하는 스포츠 선수며 국민 여동생으로 머물러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횡포 같다.

대중들은 이미 성인이 돼버린 그녀가 늘 청순하고 순진한 10대 소녀에 머무르기를 바라면서, 그 이미지의 새장 안에 김연아를 가둬놓고 조금만 벗어나면 비난하고 싶어 한다. 문제가 된 맥주 광고에 대한 한 의사협회의 비난에는 이미 숱하게 술 광고에 나온 연예인이나 박지성 같은 사람과는 다른 이중잣대의 문제와는 별개로, “갓 성인이 된 김연아가 술 광고에 나오면…” 하는 식으로 스물세 살이나 된 대학 4학년의 다 큰 처녀를 아이 취급을 하고 있다. 유명인의 술 광고에 대한 폐해에는 동의하지만 그 문제는 광고에 대한 원칙과 규제에 대한 논의가 돼야지, 이런 식으로 개인을 비난하는 식은 곤란해 보인다.

‘우유만 마시던 연아가 커피 마시더니 맥주까지’ 하는 식의 비꼼 역시 그녀가 순수함의 이미지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요 같아 보인다. 순수함의 이미지를 깨뜨린 것 역시 성인인 그녀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손해와 이미지 손상 역시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모든 국민이 그걸 원하지 않으니 그걸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권리는 없어 보인다.

팬으로서 바라는 건 김연아에 대한 영구 면책특권 같은 거대한 까방권이 아니다. 소녀시절의 평범한 삶을 희생해 가면서 쌓아온 그녀의 업적을 인정한다면, 성인이 된 그녀가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마음껏 인생의 달고 쓴 맛을 경험해 보도록 여유를 주었으면 싶다. 순수한 국민여동생 소녀 연아가 아니라 실수와 방황도 할 수 있는 성인 김연아씨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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