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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주어진 멋진 삶을 살라

오스카 와일드만큼 많은 일화를 남긴 작가도 드물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자신을 모델로 한 뮤지컬의 미국 공연 홍보차 뉴욕에 도착하자 세관 직원이 물었다. “신고할 것 없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천재적인 재능 외에는 신고할 것이 없소.”

그의 아버지는 고고학자이자 저명한 의사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어려서부터 놀라운 기억력과 탁월한 학업 성취도로 주위를 놀라게 했고, 옥스퍼드대 시절에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소문난 멋쟁이와 기인으로 통했다. 몇 편의 소설과 시집에 이어 1891년 희곡 『살로메』를 발표하고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냉소와 역설로 가득한 그의 강연에는 청중으로 넘쳐났고, 런던의 살롱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그의 경구를 돌려가며 읽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비극으로 끝난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이 추락을 경험하지만 그처럼 철저히 망가져버린 경우도 없을 것이다. 1895년 불과 몇 개월 사이 그는 최고 인기 작가에서 지탄받는 동성애자로 전락한다.

2년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레딩 교도소의 독방에서 단 하루의 감형도 없이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국적마저 박탈당한 채 파리의 허름한 호텔방에서 가난하게 3년 반을 살다 죽었다. 구걸해 가며 근근이 연명하던 시절, 거리에서 아는 여가수를 만나자 그는 길을 가로막고 말했다. “지금부터 지독히도 끔찍한 이야기를 할 테니 잘 들으시오. 돈 좀 주시오.”

말년은 이렇게 처량했지만 사후에 화려하게 부활해 그의 묘지는 지금도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광적인 키스 세례로 인해 묘비석에 유리벽을 둘렀을 정도다. 그의 삶은 그가 남긴 경구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최악의 결과는 항상 최선의 의도로 시작된다.” “하나의 인생 이상을 살았던 사람은 죽음도 두 번 맞아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를 이해하려면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을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 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뿐이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수려한 용모의 스무 살 청년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에 매료된다. “내가 언제나 젊고 이 그림이 대신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지 바칠 텐데! 내 영혼이라도 기꺼이 내줄 거야!”

그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온갖 방탕한 짓을 다하며 돌아다니지만 그는 주름살 하나 늘지 않고 청춘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의 초상화만이 흉측하게 늙어간다. 추악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초상화와 그 모든 타락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거울 속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도리언은 자신의 이중적인 삶에 끔찍한 쾌감을 느낀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뒤에야 도리언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더럽혔으며 자신의 마음을 부패로 가득 채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어쩌다가 초상화가 인생의 짐을 대신 져주고, 자신은 영원한 청춘의 때묻지 않은 광채를 계속 간직하게 해달라며 기도하는, 그 오만하고 격정적인 소름끼치는 순간을 맞게 되었던가! 모든 실패는 거기서 비롯되었다. 인생에서 죄를 범할 때마다 확실하고 즉각적인 처벌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정화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의로운 신에 대한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니라 ‘우리의 불의를 벌하여 주시옵고’라야 했다.”

도리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를 파멸시켰는데, 그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위해 기도했었다. 그 둘만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더럽혀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의 아름다움은 가면에 불과했고, 그의 젊음은 조롱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리언은 마침내 그림을 칼로 찌른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하인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초상화는 경이로운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그대로 걸려 있고, 바닥에는 야위고 주름진 역겨운 모습의 도리언이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작품 속에서 도리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탐미주의자 헨리 워튼 경의 말처럼, 노년의 비극이란 사람이 늙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젊어서 생기는 것이다. “아! 젊은 시절에 그 젊음을 만끽하시오. 따분한 것들에 귀 기울이느라 황금 같은 시절을 허비하지 말아요. 당신의 인생을 어리석고 흔해빠진 저속한 것들에 내줘서는 안 되오. 삶을 살아가시오. 당신에게 주어진 멋진 삶을 살아요!”

이제 우리 각자의 초상을 들여다 보자. 부를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언젠가 자신의 영혼을 팔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교활한 두 눈에 입술은 탐욕으로 일그러진 초상화처럼 우리 양심도 썩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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