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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에 바치는 최상의 연주

그야말로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고 왔다. 보로딘 현악 4중주단의 내한공연이었다. 거장 연주자들이 사라져 가는 세상이라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2악장에 그 유명한 ‘안단테 칸타빌레’가 담겨 있는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제1번이 주 레퍼토리였다. 보로딘 콰르텟의 연주가 원래 저랬던가. 덩치 큰 러시아 사내 넷이서 뿜어내는 선율은 뿌옇고 아련하기만 했다. 고개가 앞으로 꺾이고 옆으로 꺾이고 침까지 흘려가며 일산 아름누리 공연장의 밤시간은 흘러갔다. 제대로 음악 감상을 한 셈이다. 최상의 연주는 잠이 오게 만드는 연주라는 말도 있으니까.

잠, 잠, 잠의 나날이다. 아침에 자기 시작해 오후께야 일어나는 생활을 꽤 오래 지속했는데 몽땅 바뀌어 버렸다. 요즘은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정치인 이정희·김문수·박지원 같은 인물들과 입씨름에 가까운 인터뷰를 한다. 새로 출근길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탓이다. 진보정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따위를 논하다가 시간을 마치면 작업실로 돌아와 19세기 정서가 가득한 현악곡을 듣는 식인데 거짓말 같은 정서 전환이 이뤄지고는 한다. 새벽의 나와 오후의 내가 아주 다른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방송만 마치면 하루 종일 쏟아지는 잠, 잠, 잠…. 그런 와중에 공연장을 다녀온 것이다.

사방으로 고개가 꺾이도록 자면서 들었지만 보로딘 콰르텟이 들려준 차이콥스키(위 사진)의 선율은 강렬했다. 비애감. 그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선율의 예술가이고 그 선율이 가닿는 곳이 비애감이다. 제 몸의 상처난 곳을 혀로 핥는 듯한 쾌감과 아픔이랄까. 비애감은 그런 것이다. 차이콥스키 스스로는 자기 음악이 안겨 주는 비극적 정서를 자각하고 있었을까. 물론이다. 그가 편지에 남긴 말, “아, 나는 얼마나 늙은 울보인가!”라는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한다. 그의 비애감은 러시아인 특유의 우울성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그의 개인적 사정에서 기인한다. 차이콥스키 공식 연보의 끝 페이지는 이렇게 서술된다. ‘1893년 6월 케임브리지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해 10월 28일 성적 스캔들 때문에 명예를 위해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신적·음악적 유서인 교향곡 비창의 초연 직후 일이다’.

보로딘 콰르텟의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 6중주 음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는 세상이 다 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제정러시아 때 동성애가 발각되면 처형을 당했다. 여제자와 거짓 결혼을 해 보기도 하고 한밤중에 느닷없이 방안 가재도구를 때려 부수기도 하고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더 밝혀진 사실이 있다. 자살이 아니라 실제로는 타살이라는 것. 그의 동성애 행각이 드러나면 함께 곤란해질 것을 염려한 대학동기들이 비밀리에 사설 법정을 열어 차이콥스키에게 자살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친구들의 비정한 선고를 수용해 콜레라가 창궐한 오데사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병균이 가득한 냉수를 들이켜고 사흘을 앓다가 죽었다. 자살이고 타살이며 병사인 기묘한 죽음이다.

남몰래 비밀을 품고 살아야 하는 생애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현악 4중주 제1번은 시작부터 우울한 느낌이 가득한 두 대의 바이올린 화음으로 진행한다. 문학적 상상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음악을 들으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저토록 간절하게, 절절하게 현악기들이 말을 하고 있는데. 그 말은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왜 정상이 아닐까. 삶이란 계속해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이 지상의 삶이란 얼마나 쓸쓸한 것이련가…’. 어쩌면 그는 너무 울어서 비애를 벗어나는 심리상태를 이 곡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인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차라리 통속한 느낌마저 든다.

차이콥스키는 의외로 실내악곡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3곡의 현악 4중주곡, 한 곡의 피아노 트리오, ‘피렌체의 추억’이라고 부르는 현악 6중주곡, 이렇게 다섯 곡이 전부다. 사적 정념이 너무나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르라서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닐까. 자기혐오, 과잉감정의 지겨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고야 마는 벌거벗은 자아. 이 다섯 곡의 실내악곡은 차이콥스키라는 인물의 집약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현장과 예술세계를 넘나드는 현재의 내 일과가 얼마나 이어질까. 저쪽에서 아무리 목에 힘을 줘도 삶이 고단해 보이지 않는 정치가는 하나도 없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저들 고단한 목소리들에게 권하고 싶다. 잠을 좀 주무시라고. 특히 예기치 못한 스캔들에 휩싸여 고군분투 중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에게 권하고 싶다. 잠시 모든 스케줄을 버리고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를 들으시라고. 그리고 오래오래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라고. 무엇보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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