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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공정위의 관심법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우리가 ‘경제검찰’이라니요? 그런 표현 좀 쓰지 마세요.”



 10여 년 전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런 얘기 자주 들었다. 공정위는 ‘경제검찰 공정위’라는 표현이 기사에 나올 때마다 “공정위는 사정당국이나 규제부처가 아니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공정위는 좀 다르다. 언론이 아무리 ‘경제검찰’로 써제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외려 ‘뭐, 그렇게 봐주면 고맙지…’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공정위는 9일 대형 유통업체를 불러 간담회를 했다. 결과를 정리한 보도자료에 눈길이 갔다. “중소납품업체로부터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건의 받은 각종 불공정사례나 애로사항은 법 위반 사항으로 처리할 내용이 아니다. 오늘 같은 간담회 등을 통해 자율시정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 공정위가 핫라인과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200여 중소기업에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기업을 불러놓고 ‘우리도 알 만큼 아니까 알아서들 시정하라’는 식이다. 스릴러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떠올렸다.



 보도자료에는 “일부 대형 유통업체가 (동반성장) 협약 체결에 소극적”이라며 “대형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협약을 체결하고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언급도 있었다. 역지사지(易之思之), 정책 수요자 처지까지 배려하는 이 친절함이라니…. 후삼국시대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 자꾸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觀心) 미륵’을 자처한 궁예에게 일단 찍히면 도리가 없었다. 지난해 공정위가 혁혁한 전과를 거둔 물가전선(戰線)에서도 관심법은 통했다. 가격 인상 자체가 아니라 과다한 인상이나 편승 인상을 막기 위해 담합이나 불공정행위를 들여다봤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지만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얼마나 올리는 게 과다한지는 관심법 전문가만이 아니까.



 수수료를 둘러싼 공정위와 유통업체의 샅바싸움에 대해 공정위 한 간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토로했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니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도 찬사를 보내는 인기 있는 정책이라는 설명도 한다. 그러나 익명을 원한 경쟁정책 전문가는 “공정위가 법적 근거도 없이 행정지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정거래법은 동반성장 정책의 도구가 아니다. 경쟁법은 기업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금지하는 법이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조장하는 법이 아니다. 그런 역할은 산업정책을 맡은 지식경제부가 제격이다.



 김동수 위원장은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보기 좋다”고 종종 말한다. 칼을 언제 휘두르고 언제 칼집에 둘지 시장에 분명하게 메시지를 보내는 편이 낫다. 예측가능성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훼손되지 않도록 말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 공정거래법 1조다. 관심법에 능한 공정위 앞에는 창의적 기업이 아니라 알아서 기는 기업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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