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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내가 하던 쇼보다 사람들이 벌이는 쇼가 훨씬 흥미진진해요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는 돌고래입니다. 사람들이 ‘제돌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돌고래가 머리 좋은 건 아시죠? 나도 지능이 높답니다. 하지만 천성이 순진한 탓에 2009년 5월 사람들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아홉 살 때입니다. 옥돔이면 몰라도 국제보호종인 나는 안 잡을 거라고 믿은 게 실수였죠. 두 달 뒤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답니다. 대공원은 내가 불법으로 잡힌 줄 모르고 구입했다네요.



 그럭저럭 살아가게 됩디다. 쇼를 배웠어요. 훌라후프 돌리고 물 위로 솟구치는 재주를 배우다 보니 조련사 누나와도 친해졌지요. 마음이 통했어요. 사람들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더군요. 틀린 말이에요. 쇼가 몸에 익다 보니 어떻게 하면 칭찬과 정어리가 주어지는지 알겠더라고요. 칭찬 때문에 춤추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춤을 춰 정어리를 유도해내는 거죠.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거예요.



 그렇다고 날 불쌍히 보진 마세요. 자존심이 있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가 훌라후프 돌리고 먹이 얻는 거나, 상사한테 구박 받아가며 직장 생활하고 매달 정어리 한 양동이 받는 사람들이나 뭐가 다르죠? 말이 심했나요. 그럼 1903년 일본 오사카 박람회, 1907년 도쿄 박람회에서 살아있는 조선인 남녀가 전시품으로 ‘진열’돼 있었던 건 뭐죠. 19세기 초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 불리며 유럽 각국에서 굴욕적인 전시품 노릇을 강요당하다 26세도 못 돼 숨진 남아프리카 여성 사라 바트만은 또 어떻고요.



 바다로 보내준다니 반갑긴 하네요. 고향을 어찌 잊으리이까마는, 걱정도 많습니다. 영화 ‘프리 윌리’의 주인공 케이코 아시죠. 우리 돌고래들이 보기만 해도 덜덜 떠는 범고래예요. 케이코 형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고향 아이슬란드 바다로 돌아갔지요. 그러나 야생 범고래 떼에 끝내 끼지 못했어요. 18개월 만에 식욕을 잃고 폐렴 앓다 죽었답니다. 범고래처럼 돌고래도 사회성이 강해요. 제주도 연안에서 가족을 못 찾든가 거부당하면 나도 케이코처럼 될 겁니다. 무서워요.



 8억7000만원이나 들여 고향에 보내준다니, 병 주고 약 주기지만 어쨌든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문제예요. 다른 돌고래, 다른 동물·식물들은 어떡하죠. 동물원·식물원에서 내쫓을 건가요. 교육·종(種)보존 등 동물원의 여러 가지 역할은 안 보이나요. 게다가 집에서 기르는 개·고양이는 무엇이며 모기·바퀴벌레는 생명 아닌가요. 대한민국에서 동물원 없애고 아프리카 세렝게티나 오카방고 삼각주로 어린이들을 수학여행 보낼 건가요. 나를 바다로 보내기로 결정한 직후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 돌고래 두 마리가 새로 들어왔다는데, 이건 또 뭔가요. 참 알 수 없네요. 내 쇼보다 사람들이 벌이는 쇼가 훨씬 흥미진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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