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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대신 매 맞은 준현이 그 날 이후 나는 매를 버렸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강남·서초·송파 지역 학부모들은 ‘우리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성의 표시를 해야 할까’ 고민이 많습니다. 화장품·액세서리 같은 선물을 준비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이게 가장 좋은 보답일까요. 교사들이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스승의 날과 제자들 모습을 들어볼까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교사생활 한 이들이 보내온 메시지를 읽으며 스승의 날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글=전민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왼쪽부터) 오금고 임연주(48·일본어과) 교사, 현대고 김진황(43·국어과) 교사, 중동고 조헌(56·국어과) 교사



오금고 임연주(48·일본어과) 교사

꼭 10년 전인 2002년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마련한 스승의 날 행사를 마친 뒤 집에서 쉬고 있었어요.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였죠. 저의 평범한 하루는 한 통의 전화로 조금 특별해졌습니다. 2000년 고2 담임을 맡았을 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오영택군의 전화였습니다. 느닷없이 “선생님 댁에 찾아가도 되냐”고 묻더군요. 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대입 결과가 궁금했는데 먼저 연락해주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더군요.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딩동’하고 벨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같은 반 친구 15명과 함께 저희 집을 방문했지 뭡니까. 이규희·박규학·박진우·이종형·방윤환·고동기….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고, 재수를 하거나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도 있었어요. 모두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 정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집에서 치킨과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수험 공부할 때 어려웠던 점과 대학생활 얘기를 나눴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아이들은 고달픈 수험생활을 견디고 어른(?)이 돼 있더군요. “과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사귄다”며 자랑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담임이었을 때의 추억을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때는 독일어 교사였어요. 저는 당시 교과서 본문을 암기하라는 숙제를 내주고 외우지 못한 학생들에겐 매를 들었어요. 그때 불만을 품었던 아이가 많더군요. “맞을 때 너무 아팠다” “정말 무서웠다”고 말이죠. 저는 “그 모든 게 피가 되고 살이 됐을 거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승의 날 가장 감동적인 선물은 바로 ‘제자들의 방문’인 거 같아요. 지금까지 학부모나 제자들에게서 받았던 선물 중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이날 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번 스승의 날엔 기억에 남는 은사를 찾아가는 건 어떨까요.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뿌듯한 순간을 선사하는 거니까요.


현대고 김진황(43·국어과) 교사

스승의 날이면 떠오르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준현. 체벌이 심했던 시절, 제 손에서 매를 놓게 만든 학생이죠. 1994년 현대고에 부임했을 때 일입니다. 강남 8학군, 교육열 높은 지역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부임 첫 해에는 학생을 대하기가 어색하더군요. 그들과의 기(氣)싸움에서 이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4월 어느 날 2학년 5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욕설이 오가더군요. 수업을 중단한 채 “누가 욕설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묵묵부답이었어요. 저는 “단체기합을 주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아이들 기를 꺾을 수 있는 기회였죠. 준현이가 슬그머니 일어섰습니다. 그는 학급 반장이었어요. 저는 그를 복도로 불러내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빡, 빡, 빡 ….” 당시 들고 다니던 죽도로 준현이의 엉덩이를 정확히 10대 때렸습니다. 2학년5반은 공포에 휩싸였죠. 그 뒤로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쉬웠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날 기억이 사라질 무렵 복도에서 우연히 준현이를 만났습니다. 저한테 먼저 말을 걸더군요. “선생님, 그때 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신 거죠?” 저는 그 순간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아이들과의 기싸움에서 이기겠다고 죄 없는 학생에게 상처를 줬구나.’ 그 녀석은 수업에 방해가 될까 봐 자신이 욕을 했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맞아 생긴 상처 때문에 한 달 동안 자리에 편히 앉아 있지 못했다더군요. 부모에게 이르거나 불평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 텐데도 꾹 참았다가 웃으면서 저에게 말을 걸어준 그 아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당시 17세였던 학생이 저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셈이죠. 그 이후로 저는 매를 들지 않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한 번도 학생을 때린 적이 없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준현이와 친해졌어요. 결혼식 사회를 부탁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요즘도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연락이 와요. 훌쩍 자란 제자와 술도 한 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눕니다. 저의 교직인생을 변화시킨 준현이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중동고 조헌(56·국어과) 교사

제가 받은 스승의 날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중동고 LA동문회에서 마련한 ‘미국 초청’입니다. 30년 가까이 교직에 있다 보니 해외에 사는 제자들이 꽤 있더군요. 중동고 LA동문만 해도 6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중동고 역사가 긴 만큼 졸업생이 많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2009년 스승의 날, 제자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비행기표 보낼 테니 방학 때 미국으로 오시죠. 거절하시면 저희 화 냅니다.”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15박16일 일정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첫날엔 기수별 회장들이 마련한 환영회가 열렸어요. 제가 국어를 가르쳤던 학생만 해도 40~50명이 되더군요. 먼 이국 땅에서 의젓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제자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제자들이 마련한 일정은 생각보다 빡빡했습니다. 옐로스톤, 그랜드 캐년 등을 관광하고,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호텔과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구경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바다낚시도 즐기고 제자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자연스레 그들의 고교 재학시절 무용담이 화제가 됐습니다. 심한 체벌을 받은 추억, 교사들을 곤란하게 했던 음성써클, 인근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웠던 어설픈 영웅담이 내용이었죠. 하지만 이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생인손처럼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제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늘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생활고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택시기사를 하다가 미국으로 갔다고 들었어요. 매년 스승의 날이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던 제자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으로 간 뒤로는 소식을 알 길이 없었는데 그때 만난 겁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 곳에서의 삶도 녹록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생님, 제가 반드시 성공해 한국 최고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더군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마냥 대견할 따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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