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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New] 우면동 국민임대주택단지

우면동 한성백제시기 지배층 주거지와 고분 중 유일하게 남은 횡혈식 석실고분. 근린체육공원 공사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접근금지 줄이 쳐져 있다.


우리나라 예술 메카인 예술의전당이 우면산 북쪽 기슭 서초구 서초동에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반포대교를 건너 곧장 맞닿는 산이 우면산(牛眠山, 293m)이다. 우면산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우면동이다. 우면산 남쪽 기슭 서초구 우면동 451번지에는 한성백제시기 지배층 주거지와 그들의 무덤인 석실고분이 있었다.

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
 한얼문화유산연구원은 2010년 7월 우면산 해발 45m 지점인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조성 공사장에서 삼국시대 생활·분묘 유적을 다수 발굴했다. 한성백제시기 지배층 주거지 9동과 이들의 무덤인 석실고분 2기를 비롯해 석곽묘 2기, 수혈 2기를 찾아냈다. 신라시대 석실고분 7기도 발굴했다.

 이 일대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 구조·양식을 알 수 있는 유물)가 발굴돼 수천 년을 한 구릉 안에서 우리 조상이 계속 살아왔음을 알려줬다. 그러나 이 같은 유적이 발견된 지 1년여 만에 백제고분 1기만 남고 최근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 곳에 근린체육공원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유적은 우면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비탈에 분포하고 있었다. 서쪽은 지난해 여름 산사태로 쓸려 내려간 형촌마을이다. 동쪽은 경작지와 화훼단지가 있다. 우면동 451번지 서쪽 구릉에 있던 한성백제시기 주거지 9기와 석실고분 2기는 과천~우면산 고속화도로(우면산터널) 개설로 사라진 상태다.

 한얼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한 한성백제시기 주거지들 가운데 4호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파내 바닥을 만든 구조였다. 주거지 규모는 길이 660㎝, 너비 386㎝, 최대 깊이는 20㎝였다. 출입구·부뚜막 형태가 남아 있었다. 주조 틀로 찍어낸 철부·철착(구멍 뚫는 연장)·꺽쇠·철준(창날)·철도자(칼) 같은 철기류가 나왔다. 토기류로는 타날장군(때린무늬 그릇)·타날호·평저호·개(蓋)·배(杯)와 방직 도구인 석제방추차(실 감는 도구), 곡물을 가공할 때 사용한 석제절구가 출토됐다.

 5호 주거지는 451번지 서쪽 비탈에 해당하는 해발 46~47m 경사면에 있으며 1호 주거지와 동쪽으로 약 1m 떨어져 있었다. 주거지 규모는 길이 424㎝, 너비 332㎝, 최대 깊이 62㎝였다. 주거지 동남쪽 모서리에 있는 ‘무시설식노지’ 부근에서 철 찌꺼기인 슬래그(slag)가 출토됐고 바닥에서는 철모(창끝)·철촉·철정(철못)·꺽쇠 등 철기류가 나온 점으로 보아 철기를 만들던 공방(工房)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대호, 심발형(자루모양) 토기, 조족문(새발모양무늬) 타날호, 시루, 배 같은 토기류가 나왔다. 대호는 녹인 쇠를 다루는 물을 담던 독이다. 이들 주거지와 공방은 5세기 한성백제시기 유적이다.

 한성백제시기 석실고분은 우면동 451번지 해발 48~49m에서 발굴됐으며 주거지나 철기공방 유적과 10m 떨어져 있었다.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공사장에서 발굴된 2호 석실분은 우면동 451번지 서쪽 비탈 해발 45m 능선에 있다. 석실 크기는 길이 374cm(잔존), 너비 445cm, 깊이 112cm다. 묘제 형식은 묘도가 있는 횡혈식(橫穴式)이다. 묘광 바닥에서 철제물미(꼬챙이)·철도자·철제살포(농기구)·관정(관못) 등 철기류가 출토됐다. 묘광 상부에서 토기편을 수습했으며 경사면 묘광 위쪽 눈썹 모양 주구(周溝)에서 호형토기편이 나왔다. 이것들도 5세기 한성백제시기 유물로 보인다.

 우면동 주거지나 공방 유적 그리고 석실고분에서 출토된 철기류는 주조철부·철도자, 살포와 같은 농기구, 철정·꺽쇠 등 결구(結構) 철기류, 철준(창날)·철모(창끝)·철촉물미(막대기 끝에 꽂는 촉) 같은 철제 무기류다. 이 점으로 보아 우면동에 살았던 한성백제시기 사람들은 철기공방에서 농경도구·공구·결구류·무기류를 생산했다. 특히 철준·철모·철촉 등 각종 철제 무기류를 만든 걸 보면 철기공방은 오늘날 방위산업시설 같은 곳이었다.

 7호 석실분은 우면동 451번지 남쪽 비탈 해발 34~36m에 있다. 주축 방향은 동·서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석실 모양은 장방형에 가깝고, 크기는 길이 297㎝, 너비 272㎝, 깊이 105㎝다. 일부가 1997년 과천~우면산 고속화도로(우면산터널) 공사 때 사라졌다.

 서울에서 한성백제시기 지배계층 석실고분을 찾는 일은 1970년대 서울 송파구 일대를 발굴한 후 처음이다. 우면동 451번지 구릉 왼쪽에 있던 유적은 이미 사라졌고 주거지와 공방 유적, 분묘가 있었던 곳은 지금 근린체육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국민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유적 일부라도 복원해 역사공원을 만드는 것이 주민을 위한 일이 아닐까?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한강 하류에 세워져 475년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500여 년간 풍납토성(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다. 한성백제시기 수도에서 불과 8㎞ 안에 있는 우면산 공방 유적은 백제왕궁에 공급하는 철기류를 생산하기 위한 중요한 국영산업시설이었는지도 모른다. 500년 한성백제사를 복원하기 위해 유적은 그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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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