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우울증 차별, 법에 있는 것만 77가지

한국이 지금처럼 잘살게 된 데는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이 큰 역할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많이 일하고 강도 높게 일한다.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나 그렇다. 이런 팍팍한 삶에 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극심한 스트레스에다 우울증이 파고든다. 인제대 백병원 우종민(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1년 우울증을 경험한 한국인이 전체 인구의 3.6%인데 세계 평균(1%)보다 월등히 높다”며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병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 교수의 진단에서 보듯 우울증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아주 가까이 와 있는 병이다. 공황장애·불면증 등도 마찬가지다.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몹쓸 병’으로 낙인찍혀 있다. 가족도 환자도 모두 그리 여긴다. 정부가 우울증·불안장애·불면증 등 가벼운 질환을 정신병에서 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낙인의 폐해는 심각하다. 병을 숨기고, 심지어 자살로 이어진다. 이런 불만들이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밀려든다.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업무 부실 조사를 받다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2주 만에 몸무게가 6~7㎏ 빠졌다. 온종일 초조하고 불안하고 잠을 거의 못 잤다. ‘초조성 우울증’이었다. 정신과 전문의는 찾을 생각을 안 했다. ‘내가 왜 정신과에 가야 돼?’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끊었다.

 큰맘 먹고 정신과를 찾아도 진료 기록이 남을까 노심초사한다. 산후 우울증을 앓던 회사원 정모(35·여)씨는 출산 후 2~3개월부터 불면증이나 불안감, 우울 증세가 심해졌다. 어렵게 진료를 받긴 했으나 친정어머니 이름을 빌렸다. 그런 편의를 봐주는 병원도 어렵게 찾았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애한테 폐해가 갈까 봐 숨기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년 6학년 최모(12)군은 1~2학년 때부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았지만 엄마가 병원행을 거부했다. 최근 다른 애들과 폭력사건이 발생하자 병원을 찾았지만 병세는 많이 악화된 상태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소아·청소년의 ADHD 환자는 2007년 4만8000명에서 지난해 5만7000명으로 5년 새 18.4% 증가했다.

 실제 취업이나 민간보험 가입 거부 등 사회적 차별은 더 심각하다. 법적 불이익을 주는 경우만 77가지에 달한다. 20대 후반의 한 남성은 가벼운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게 되면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지하철 할인 등 각종 장애인 혜택이 필요했다. 4년여 만에 거의 완치돼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공공기관에 취업 알선을 의뢰했지만 정신장애를 문제 삼아 거부당했다. 민간 기업이 잘 채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9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장애인 보험차별 개선 토론회’에서 보험사들의 거부 사례가 쏟아졌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E씨(29·여)는 우울증 치료 전력을 이유로 종신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다. 8년 전 두 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았거나 3년 전 불면증 치료를 한 번 받은 사람이 거부된 경우도 있다. 국립서울병원 남윤영(정신과 전문의) 기획홍보과장은 “지금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격 제한이 너무 많다”며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관련 일을 하는 시점에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우울증을 정신병에서 제외하는 것 외에 ▶전 국민 정신건강 검사(1인당 평생 15회)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 강화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 관리 강화 등의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인제대 우종민 교수는 “정부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비춰 진작 그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요즘은 김장훈·차태현·이경규 등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이 별것 아니구나’라는 인식이 퍼지는 점도 정부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됐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