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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이 웃다 …은교 그 자체 김고은을 보고

영화 ‘은교’에서 은교 역을 했던 배우 김고은(왼쪽)이 봄바람 든 여고생 마냥 해맑게 웃으며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리고 있다. 소설 『은교』의 작가 박범신이 푸근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원한 처녀성의 상징인 17세 소녀 ‘은교’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냈던 작가 박범신(66). 박씨의 장편 『은교』가 영화화되면서 작가의 관념 속 ‘뮤즈’는 뼈와 살을 가진 실체로 살아났다. 영화 ‘은교’(정지우 감독)의 히로인 김고은(21)이다.

 김고은은 노시인 이적요(박해일)와 문하생 서지우(김무열) 사이를 오가며 둘간의 애증을 증폭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의 열연 덕에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족쇄에도 10일 현재 전국 관객 11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네 청춘만큼이나 짧은 봄, 그 끝자락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김고은은 영락없는 은교였다. 원작자에게 궁금했던 점들을 당돌하리만큼 직설적으로 물었다. 까르르 환한 웃음도 터뜨렸다. 박 작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나이차를 뛰어넘어 은교와 교감할 무렵의 시인 이적요도 그런 표정이었을 게다.

 ▶김고은=이름이 왜 은교인가요.

 ▶박범신=은교(恩橋), ‘은혜로운 다리’라는 뜻이죠. 절제 속에 살던 말년의 시인이 은교를 만나 감정과 본능의 해방을 느끼며 죽습니다. 인생 말년의 축복이자 다른 세계로 가는 다리가 된 거죠.

 ▶김=이적요는 왜 은교에 빠졌나요.

 ▶박=우연히 마주친 은교의 손등 피돌기에서 역동적인 순수성과 관능을 느껴요. 그것에 홀린 거죠. 영원히 살고 싶은 갈망에서 바라볼 때 은교는 보통 소녀가 아닌, 불멸의 표상으로 보이는 거에요. 반면 은교에게 이적요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때로는 남자 같은 대상이 된 거죠.

 ▶김=은교 역을 맡기 전에는 나이 들면 몸도 마음도 함께 늙는 줄 알았어요.

 ▶박=인간의 욕망은 80대 노인이나 10대 소년이나 같은 거에요. 나이 들수록 초월적인 것에 대한 욕망을 갖죠. 이적요의 머릿속에서 은교는 영원히 늙지 않아요.

 ▶김=저와 처음 만났을 때 “뽀뽀는 해봤어요”라고 물어보셨잖아요.

 ▶박=‘어려 보이는 쟤가 노인의 감정과 상처를 이해하는 은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그렇게 물었던 거에요. 다행히 영화 속에서 마음 속 폐허를 가진, 담대한 소녀로 빛나더군요. 그런데 성형했나요?

 ▶김=딱 봐도 손 안댄 얼굴로 보이지 않나요. (웃음)

 ▶박=사실 고은양이 뛰어난 미인은 아니에요. 하지만 때묻은 미인보다 발군의 아름다움을 보여줬어요. 윤색되지 않은 순결함이랄까.

 ▶김=연기에 몰입돼 실생활에서도 ‘헐’ ‘대박’ 같은 은교 말투를 쓰곤 했어요.

 ▶박=고은양 외에 은교를 연기할 배우는 없었을 거에요. 영화에서 층계를 경쾌하게 오르내리는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통통통’ 소리를 내던 소설 속 은교가 다가오는 것 같았죠.

 ▶김=은교로 살았던 5개월이 몇 년처럼 느껴져요. 경험하지 못한 감정들에 시달리다 보니 얼굴도 성인으로 변한 것 같아요.

 ▶박=은교 안에는 10대 소녀도, 60대 여인도 있어요. 짧은 기간에 다양한 층위의 여인을 경험하며 성숙해진 거죠.

 ▶김=은교는 앞뒤 재가며 행동하는 요즘애들과 달리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요. 그게 가장 부러웠어요.

 ▶박=요즘 젊은이들은 안전한 곳으로만 가려 해요. 젊어도 안정된 삶을 위해 눈치 보며 산다면 노인인 거에요. 현실을 부정하고 비판하고, 그걸 넘어서 불온하게 살길 꿈꿔야 젊은 거죠.

 ▶김=영화를 찍고 난 뒤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박=은교 역을 한 이상 퇴로는 없어요. 평생 배우로 살아야죠. 영악하게 늙지 말고 성숙해지세요. 성숙해져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요. 나의 은교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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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