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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올랑드 당선자께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펠리시타시옹(Felicitations)! 축하합니다. 결국 해내셨군요. 프랑스 제5공화국 반세기 만에 두 번째 좌파 정권 창출에 성공했습니다. 17년 만입니다.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은 지하에 있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일 것 같습니다. 자기 손으로 발탁해 키운 ‘미테랑의 자식’이 우파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빨간 장미로 바스티유 광장을 뒤덮었으니 말입니다.

 예정된 승리였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거칠고 오만한 언행과 경박한 처신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반감이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귀하의 넉넉하고 수수한 인상이 사르코지의 ‘블링블링’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덕을 본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귀하가 좋아서라기보다 사르코지가 싫어서 귀하에게 표를 준 유권자가 많았을 것으로 봅니다.

 결선투표 나흘 전 2시간30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귀하와 사르코지 후보의 일대일 맞짱 토론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제가 프랑스 유권자가 아닌 것이 솔직히 다행스러웠습니다. 어느 쪽에도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토론 내용과 수준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거짓말쟁이라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짜증이 났습니다. 서로 밀리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보기 흉한 기싸움으로 일관했습니다.

 소소한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기에는 프랑스가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 심각합니다. 프랑스는 기울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병자(病者)’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귀하는 위기를 맞은 프랑스호(號)의 새 선장입니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샴페인을 터트릴 여유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프랑스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총체적 무기력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턴가 프랑스는 모든 면에서 활력을 잃었습니다. 경제는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활력과 함께 창조적 에너지도 시들해졌습니다. 한때 세계인을 매료시켰던 예술적·문화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인이 활력을 되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잠에서 깨워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새 선장이 할 일입니다.

 공무원과 공공부문 종사자부터 깨워야 합니다. 그들이 사명감을 갖고 바쁘게 일하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 적당히 시간 때우며 월급 받고, 복지 혜택 누리며 놀러갈 궁리만 합니다. 공공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에 근본적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 비율은 프랑스가 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국가가 거둔 세금을 풀어 고용을 유지하고,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는 구조입니다. 과도한 공공지출과 복지 부담 탓에 갈수록 재정적자가 늘어 누적 적자가 GDP의 90%에 달하고 있습니다. 살림은 쪼그라드는데 여전히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빚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신용등급 ‘트리플 A’ 지위 박탈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개혁의 팡파르를 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스스로 뼈를 깎는 모범을 보이며 진정성을 갖고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지도자답지 않은 언행으로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노동자와 서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개혁은 사실 우파 정권이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개혁은 오히려 좌파 정권이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귀하가 프랑스를 바꿀 생각이라면 일단 다음 달 총선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577석 중 좌파가 197석밖에 안 되는 구도를 뒤집지 못하면 귀하는 바로 ‘동거(同居) 정부’의 식물 대통령이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전통적 지지층을 만족시킬 약간의 포퓰리즘적 조치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총선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달라져야 합니다. 선거는 집권이 목표지만 집권하면 국익이 목표가 돼야 합니다. 공약은 집권을 위해 있는 것이지 100% 지키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귀하의 멘토였던 미테랑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습니다. 오늘날 독일이 잘나가고 있는 것도 좌파 정권의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어젠다 2010’이란 이름으로 노동시장과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술했기 때문입니다. 그 혜택을 우파 정권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누리며 ‘유럽의 리더’로 큰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 한 명이 나라를 바꿀 순 없습니다. 바꾸는 것은 국민입니다.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프랑스 국민을 잠에서 깨우십시오. 귀하의 성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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