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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자씨 “석 달 내 우리 못 빼내면 죽었다 여겨라”

북한이 간염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온 신숙자씨(왼쪽)가 북한 요덕수용소 수감 당시 큰딸 혜원씨(오른쪽)와 작은딸 규원씨(가운데)와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은 1991년 작곡가 윤이상씨가 신씨의 남편 오길남씨에게 다시 월북을 종용하며 건넨 사진 중 하나다. [연합뉴스]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고향이자 바다가 아름다운 경남 통영시. 이곳 야트막한 언덕길에는 통영여자중학교(도천동 도리1길)가 있다. 이른바 ‘통영의 딸’로 불리는 신숙자씨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 신씨는 북한을 탈출한 오길남(70)씨의 부인으로 북한의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통영의 딸’ 인생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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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방북 이전 독일에서 두 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신씨 가족의 월북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윤이상과 신씨는 같은 고향 출신이다. 이 학교 아래쪽에는 윤이상의 동상이 있는 도천테마파크가 있다. 공원 내 건물에는 윤이상기념관도 있다. 신씨는 윤이상의 생가가 있는 도천동과 바로 붙은 서호동에서 42년 12월 태어났다. 신씨는 이곳에서 통영초등교(45회)와 통영여중(9회)을 졸업했다. 이어 신씨는 마산대학의 전신인 마산간호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갔다.



신씨와 두 딸이 바이올린 연습실에서 미소 짓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졸업 후 20대에 독일로 건너간 신씨는 간호사로 일했고, 그곳에서 유학생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던 오길남씨와 결혼해 두 딸 오혜원(현 나이 36)·규원(33)을 낳았다. 신씨 부부는 85년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갔다. 오씨는 “85년 12월 조국을 위해 경제학자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윤이상의 제의를 믿고 월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발간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 앞서 93년 발간한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라는 책을 통해서도 윤씨가 월북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85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휴양지에서 오씨와 두 딸이 함께한 모습. [연합뉴스]
 월북한 오씨 가족은 3개월간 외부와 차단된 채 세뇌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씨는 1년 뒤인 86년 11월 초 독일에서 유학하는 남한 출신 부부를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고 독일로 가던 중 혼자라도 탈북하라는 아내의 말에 따라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직원에게 구조를 요청해 탈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씨는 92년 4월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에 자수했고, 같은 해 5월 귀국했다. 오씨가 북한을 떠나기 전 아내 신씨는 “탈출에 성공하면 석 달 안에 빼내달라.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우리 모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잊으라”고 말했다는 게 오씨의 주장이다. 오씨의 탈출로 아내 신씨와 두 딸은 87년 말 ‘요덕수용소’에 갇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91년 육성 테이프를 보낸 것을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오씨는 “93년 초 아내가 수용소에 갇혀 있고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는 등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탈북자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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