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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한마디에 날개 단 '왕차관' 예고된 추락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금품 수수 혐의로 영장이 발부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왕비서관, 왕차관, 희대의 간신…. 7일 구속수감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따라다니던 수식어다. 그는 현 정부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높게 날아오른 사람이다. 그가 “특별이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박영준, 각종 의혹 연루설 돌더니 결국 구속 … 영포라인도 함께 몰락



 2007년 12월 무렵만 해도 그는 실무자에 불과했다. 경선·대선 과정에서 조직관리란 궂은 일을 맡았다곤 하나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일 뿐이었다. 모임이 끝날 때면 캠프 핵심인사들이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선 다음날인 20일 새벽 이명박 대통령의 특명을 받으면서 지위가 확 달라졌다. “당선자 비서실을 총괄하라. 정권인수위 인선 작업을 마무리하라.” 이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에게 권력을 쥐여줬다. 당시 한나라당의 이상득·이재오 의원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불렸던 정두언 의원이 인선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자 “못 보여준다”고 맞설 정도가 됐다. 대구에 출마하려던 그를 청와대로 이끈 것도 이 대통령이었다. “곁에서 도와달라”고 했다. 이명박계 인사들은 그 이후 사석에서 “출마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텐데…”라고 말하곤 했다.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시절 그는 인사와 정무·감찰을 좌지우지했다. 청와대의 핵심 기능이었다. ‘왕비서관’이란 말이 나온 연유다. ‘각하의 뜻’이라며 이런저런 인사를 하는 그에게 대놓고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웅성웅성하는 불만은 쌓여갔다. 그러다 2008년 6월 정두언 의원이 “대통령 주변 일부 인사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박영준 비서관이 제일 문제다. 보좌관 한 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치고 나왔다.



 논란이 일자 ‘왕비서관’은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7개월여 낭인 시절을 보낸 뒤 2009년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으로 발탁됐다. 한때 15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책임질 정도로 막강해 ‘왕차관’으로 불렸다. 일요일 집무실에서 대선 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사람들을 불러놓곤 “대통령이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내가 대신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또 그해 6월 이상득 의원이 정치 2선 후퇴 선언을 하기 앞서 정두언·김영우·조해진 의원 등 이명박계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왕차관’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정 의원이 “박영준을 대한민국 사람이 다 SD(이상득 의원 지칭) 사람이라고 한다.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보는데 왜 그냥 두느냐. 오늘 2선 후퇴한다고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이번엔 정운찬 총리가 견제하려고 했다. 2010년 이 대통령과의 두 차례 독대에서 정 총리는 “인사권 일부라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왕차관’을 경질하겠다는 의사였다. 다들 “박 차관이 이번엔 물러나겠지”라고 예상했다. 그해 8월 그는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달 뒤 중동·아프리카에 자원외교를 한다며 전세기를 띄웠다. 여기에 28개 기관의 수뇌부 47명이 동행했다. 국가수반급 외교행렬과 비슷했다. 야당에선 “장관은 혈혈단신으로 터키를 다녀왔다. 이제 왕차관을 소통령으로 승진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 고 공격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그러나 그를 떠받치던 정권의 힘은 확 빠진 상태였다.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그가 관련됐다는 비리설이 끊이지 않았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로 알려진 데다 아프리카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했다는 CNK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왔다. 그는 SLS그룹 이국철 회장의 로비 사건으로도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매번 무사히 넘겼던 그가 네 번째(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검찰의 칼날은 피하지 못했다. ‘영포(영일·포항)’ 라인의 핵심이었던 이상득 의원은 이미 보좌관 비리로 정계를 은퇴했고,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비리 혐의로 수감됐다. 박 전 차관의 추락은 영포 라인의 몰락을 확인하는 마침표인 셈이다.



 4년 전 박 전 차관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정두언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4년 전부터 일종의 112 신고를 했고 여러 차례 경고하고 언질을 줬는데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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