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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영포라인 … 서울 사람들 아인교?”

권석천
논설위원
“보소. 이 도다리 얼만교?”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한쪽 구석에선 가오리와 달갱이가 반짝이는 오후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다.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30분. 지난 금요일 포항 죽도시장을 찾았다. 이 시장은 이명박(MB) 대통령에게 정서적 뿌리와 같은 곳이다. 그는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이던 2007년 7월 시장을 방문했다. 검증 공방으로 곤욕을 치르던 때였다. MB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2000여 명의 시민 앞에서 “이곳에서 (학비 마련을 위해) 장사하던 정신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서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5년. 파이시티 사건으로 ‘MB의 멘토’라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최측근이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차례로 구치소를 향했다. 2008년 총선 당시 지역 단체들이 6선 출마를 촉구했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형제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던 포항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장에서 마주친 이들에게서 “할 말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포(영일·포항) 라인’ 얘기를 꺼내자 나이 지긋한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박영준은 이상득 의원 보좌관을 했지만 칠곡 출신 아인교? 최시중, 이영호, 이인규. 그 사람들이 어데 포항 사람이라고… 고향 떠난 지 수십 년 된 서울 사람들 아인교? 지(자기) 팔, 지가 흔든 걸….”



 서울에 올라간 이들끼리 아래위로 연줄 만들어 벌인 권력 놀음에 영일·포항의 이름을 갖다 붙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맛있게 식사하신 집!’ 횟집 간판이 보였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남현자(57·여)씨는 “2009년 9월 영일만항 개장식 때 대통령이 오셨다”고 했다.



 “그래 머리 좋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식당 안에 걸린 MB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 떼라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여(카운터)까지 들어왔다 나가뿌는 외지 사람도 있지만 내는 그래 생각 안 합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 아입니까.”



 죽도시장에서 신호등 두세 개를 지나면 ‘포항의 명동’으로 불리는 중앙상가다. 육거리 쪽으로 들어서자 아웃도어 상점들이 매장 밖에 차양막을 치고 옷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경기가 너무 나빠 지나가는 손님이라도 잡으려는 것”이라고들 했다. 차양막 아래 있던 상점 주인에게 “이 의원이 끌어온 ‘형님예산’도 있는데 왜 경기가 안 좋으냐”고 물었다.



 “도로 닦고 철도 놓는 형님예산이 우리 같은 서민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지주(地主)나 건설사만 좋았다 아입니까. 공장이 들어오고 일자리 늘어야 경기가 안 좋아지겠습니까. 차라리 여수박람회 같은 거라도….”



 “현 정부 들어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 “짝사랑이었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애향단체인 ‘포항뿌리회’ 이승현(62) 회장은 “안타깝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영포라인, 형님예산, 짝사랑. 인구 52만의 도시 포항이 중앙 정치의 자장(磁場) 안에 예속돼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MB 임기 5년차, 포항엔 애증과 허탈함과 무력감 같은 것들이 조용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서울에서 입신한 뒤 고향에 돌아와 표를 달라는 정치인. 그 정치인이 ‘지역 개발의 메시아’가 돼주길 앙망하는 주민들. 이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어느 곳이든 여의도 정치의 식민지일 수밖에 없다.



 “포항인 게 부끄럽습니다.” 육거리에서 만난 한 40대가 4·11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김형태 당선인이 제수 성추행 의혹에 이어 선거법 위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두고 내뱉은 말이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다시 자괴감으로 바뀌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닙니다. 포항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볼모로 잡고 있는 정치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냉정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들을 위한 텃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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