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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배동병씨가 폐지를 실은 트럭을 점검하고 있다. 그는 폐지를 모아 번 돈을 장학금으로 전달하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딸 예쁘지요?”

장애 딸 돌보며 400명에게 장학금
장한 어버이상 받은 배동병씨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마흔 넘은 딸을 이렇게 소개했다. 쑥스러워하는 딸의 만류에도 “내 눈엔 제일 예쁘다”며 막무가내다. 다정스럽게 자신의 팔짱을 끼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엔 사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함께 담겼다. 그의 딸은 뇌성마비 4급의 장애인이다.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났을 무렵 앓은 열감기 탓이다. 아버지는 딸의 장애를 ‘내 탓’이라고 했다.



 “갓난애가 심하게 경련을 하는데도 ‘곧 괜찮아지겠지’ 했어요. 그렇게 그냥 살았지요. 그런데 세 살 때까지 걷지도 못하더라고요.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장애 판정을 내리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결심했다. 영원한 딸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로…. 이후 딸은 아버지의 1남3녀 중 가장 애틋한 자식이 됐다. 올해 서울시의 장한 어버이상 수상자로 결정된 배동병(78)씨와 딸 성은(43)씨의 이야기다. 서울 중구에 사는 배씨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녀를 바르고 훌륭하게 키워낸 공로로 이 상을 받게 됐다.



배동병씨와 딸 성은씨.
 40년 전 첫 장애 판정을 받을 당시 성은씨는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내 딸이 설 수만 있다면’. ‘걸어다니게 된다면’. 아버지는 이런 희망을 한순간도 버린 적이 없다. 전국을 다니며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녔다. 교회로 사찰로 다니며 기도도 했다. 힘들다고 칭얼대는 딸을 독하게 내몰며 걸음연습도 시켰다.



 정성은 통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 부모 등에 업혀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3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장애인들과 같이 중·고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결혼도 해 예쁜 딸도 낳았다. 그는 “힘들게 키운 딸이지만 이제는 중풍으로 쓰러진 제 엄마를 간호할 정도로 속 깊은 딸이 됐다”며 연신 자랑했다.



 그러나 배씨가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한 이유는 자식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배씨는 “나도 가난으로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풍족하지 못한 살림이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폐품 수집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목을 누비며 폐지를 모아 그 돈을 장학금으로 냈다. 지난 20여 년간 그가 낸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 수만 400명이 넘는다.



서울시는 제40회 어버이날인 8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기념식을 열고 배씨 등 6명에게 장한 어버이상(시장 표창)을 수여한다. 또 효행자·노인복지 기여자 등 38명도 수상의 영예를 안는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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