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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⑬ 강연호 시집 『기억의 못갖춘마디』

강연호
나의 슬픔은 당신에게 건너가지 않는다. 함께 기뻐하기는 쉬워도 함께 울어주기는 어렵다. 내 슬픔의 매장량은 나조차 알지 못한다. 슬픔이란 층위에서 당신과 나는 타자다.



울지 못하는 슬픔은 난치병
시인은 시로 내 슬픔을 검진한다

 그런데 종종 이런 때가 있다. 어떤 시를 읽는데 그 시로 내 슬픔이 온전히 건너가버리는 때. 그러니까 시가 내 슬픔을 정밀하게 검진하는 순간 말이다. 그 일련의 절차를 슬픔의 건강검진이라 부르자.



 슬픔의 건강검진이란 마음의 형편을 물어보는 일에서 시작될 테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시는 가장 아름다운 안부일지도 모른다. 강연호의 신작 시집 『기억의 못갖춘마디』(문예중앙)에서 어떤 치명적인 안부를 들었다.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오랜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 서로 멀리 있었다//…//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보다는 건강하다는 것/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슬픔에도 건강이 있다/그녀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그제서야 나는 혼자 깊숙이 울었다’(건강한 슬픔)



 그녀와 나는 고만고만한 인연이었던 모양이다. 어디론가 떠난 적은 없지만, 서로 멀리 있었다. 그런데 불쑥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다만 울음 소리를 들어주었다. 끝내 안부를 묻진 못했다. 그녀는 오래 울었고, 나는 늦도록 침묵했고,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이 시가 서술하는 슬픔의 건강검진은 이렇다. 그녀는 무턱대고 울음부터 쏟아낸다. 이 슬픔은 건강하다. 울음이 그치면 슬픔도 소멸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야 소리 없이 울먹인다. 이 슬픔은 병약해 보인다. 너무 아픈 아픔은 울음마저 삼키는 법이다.



 그녀는 아니겠지만, 나는 달랐던 모양이다. 그녀를 향해 저도 모르는 짙은 그리움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고만고만한 인연이 아니었던 게다. 그래서 차마 함께 울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게 치명적인 안부를 물어온 것이다. 제 건강한 슬픔으로 내 병약한 슬픔을 건드렸다.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면, 울지 못하는 슬픔은 난치병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일은 안부를 묻는 것. 슬픔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치유의 언어를 처방하는 것.



이 시집은 11년 만의 신작이다. 강연호 시인이 11년 만에 물어오는 안부다.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가 깨친 삶의 진리는 이랬다.



 ‘…/다만 잘 지내지?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어주는 게/그나마 세상의 인연을 껴안는 방식이라는 것/…’(중언부언의 날들)



 안부란 타인의 상태를 돌아보는 일. 슬픔의 건강검진도 안부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모든 안부는, 어쩌면 시다. 슬퍼서 외롭고, 외로워서 슬픈 세상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한 줄의 시를 기억하자. 위태로운 인생에게 이보다 절박한 시는 없다. 다만,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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