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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직접 그린 벽화 100여 점, 지상 최대 야외미술관

1 아름다운 야생화와 나비로 장식된 셰필드 농가 주택.2 마을 소식지와 인쇄물을 제작했던 인쇄소 건물에 그려진 작품. 셰필드 벽화에는 주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3 태즈메이니아 북쪽 관문인 데번포트 남쪽에 자리한 농촌 셰필드 전경.4 마을이 조성될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과 마을 풍경이 그려진 관광안내소 벽.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구촌에는 흥미로운 마을이 즐비하다. 어떤 마을은 유구한 역사로, 어떤 곳은 매혹적인 풍광과 풍물로 방문객을 유혹한다. 선호하는 취향이 다른 만큼 특정 지역이나 마을이 좋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2500곳에 달하는 도시와 시골을 둘러본 내게 진한 감동의 울림을 준 곳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호주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 내륙에 자리한 작은 마을 셰필드(Sheffield)를 선택할 것이다.

40년간 작업... 2m부터 40m까지 다양
멜버른 항구에서 ‘스피릿 오브 태즈메이니아’호에 몸을 의지하고 망망대해를 10여 시간 남짓 이동해 마주한 태즈메이니아 북쪽 관문 데번포트(Devonport). 아담한 항구도시 데번포트를 뒤로 하고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려 마주한 셰필드 마을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행복한 유혹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곳이다. 영국 사우스요크셔 셰필드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중심이 되어 건설한 이 마을은 1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사방이 나지막한 구릉으로 둘러싸인 셰필드는 농업·상업·관광업에 종사하는 600여 주민이 살고 있다.

5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경관으로 벽을 장식한 카페.

셰필드는 여느 시골과 좀 다르다. 사방이 벽화다. 주민 스스로 타 지역과 차별화하기 위해 마을 전체를 거대한 야외미술관으로 꾸며놓은 이색적인 문화공간이다.
태즈메이니아 섬 개발이 한창이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활기 넘치던 마을은 개발이 마무리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평범한 시골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위기를 감지한 주민들은 여러 차례 회의 끝에 마을 전체를 야외미술관으로 특화시키기로 했다. 모델은 캐나다 빅토리아 섬의 체마이누스(Chemainus)였다. 그림에 재능 있는 주민들이 밑그림을 그려주면 나머지 주민이 벽화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하나둘씩 벽화를 완성해 나갔다. 이런 작업은 40여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청소년과 어린이까지 동참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태즈메이니아 섬의 주요 명소로 탄생시켜 놓았다. 마을에 그려진 벽화는 줄잡아 100점이 넘는다. 건물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폭 2~3m에 길이 5~6m에 이른다. 물론 폭 4~6m, 길이 30~40m나 되는 벽화도 수십 점에 달한다.

6 어느 잡화점의 벽화는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든다.7 크레이들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주민을 그린 벽화. 벽화들은 모두 건물주 혹은 마을과 연관이 있다.8 셰필드의 주민.

크기만큼이나 내용도 다양하다. 영국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처음 마주했던, 태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롤랜드 산과 배링턴 호수를 담아낸 거대한 벽화를 필두로 댐을 건설하는 광경이나 마을이 조성되는 과정을 그려놓은 벽화를 보면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
마을 벽면을 장식한 벽화들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담겨 있다. 공공기관으로 사용했거나 사용 중인 건물에는 ‘공식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국가 차원의 주요 공사, 행사, 사건 등이다. 타운홀로 사용했던 벽에는 영국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주택과 농장을 건설하는 광경을 그려놓았다. 시민회관에는 주민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공원과 광장에는 마을 발전사를 그려놓았다.

9 가축과 함께 나들이에 나선 셰필드 주민.

신작로를 따라 늘어선 상점에 그려진 벽화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마을 입구에 터를 잡고 있는 건물은 원래 역마차가 쉬어가던 곳이었다. 사람들이 역마차에 타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이유다. 농가와 카페, 가게로 사용되었던 건물에는 주인의 직업이나 그곳에서 생산한 물품과 연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대장간 벽에는 마차에 사용하는 말굽이나 농기구를 제작하는 장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식이다. 누구나 건물의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걸음을 붙잡는 곳은 교회와 거대한 자연을 그려놓은 농가였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교회 벽에는 폭 4m, 길이 30m가 넘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농부가 농지를 개간하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3점의 작품으로 이뤄진 벽화는 개척 당시 셰필드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셰필드의 벽화는 유명 미술관이 소장한 세계적인 거장이 그린 걸작에 비해 분명 부족한 면이 있다. 짜임새와 섬세함, 예술성에서는 조금 미비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m에 달하는 벽면을 장식한 뛰어난 색채와 세련된 표현기법은 관람자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셰필드의 벽화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모든 주민이 함께 제작한 생활예술이기 때문이다.

개척시대 음식과 전통 복장 즐겨
셰필드 주민들은 과거에 관한 애착이 유별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나무를 깎아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 대를 이어 전통적인 숙박시설인 민박(B&B)을 운영하는 사람, 레스토랑과 잡화점 주인 등 꽤 많은 주민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다. 그들의 터전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부분의 건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지금까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의 경우 실내를 새롭게 단장한 것을 제외하면 처음 모습 그대로다.

옛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민들답게 그들의 삶도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상점 주인은 조상들이 즐겨 착용했던 전통 복장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관광 안내소에 근무하는 직원도 개척시대 유행했던 복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비단 관광업이나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과 농기구도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음식도 개척시대 즐겨 먹었던 캥거루 스테이크 같은 전통음식을 즐기고 방문객에게 제공한다.

지명조차 생소한 마을 셰필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주민들의 생각과 일체된 행동이 평범한 시골을 국제적인 명소로 바꿀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여행 메모
셰필드 가는 길 인천→멜버른 직항 이용. 멜버른→태즈메이니아 북쪽 관문 데번포트(Devonport)까지 항공과 배편으로 이동 가능. 항공 1시간, 배편 10시간 소요. 데번포토 공항이나 항구에서 렌터카 이용 시 셰필드 마을까지는 40∼60분 걸린다.인구가 600여 명에 불과한 셰필드 마을이지만 매년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마을에는 호텔 세 곳을 비롯해 B&B, 대여용 주택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음식과 차를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과 찻집, 상점, 낚시와 에코 투어상품 등 다양한여행상품과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마을 숙박과 각종 정보는 마을에 자리한 관광 안내소에서 제공받을 수 있다. 기타 여행정보: www.australia.com

셰필드(호주) 글·사진 이형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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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