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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보이면 지는 거다" 중년男 스펙, 학벌·체력 아닌…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아저씨들은 왜 샌들에 긴 양말을 신을까. 이해가 안 된다. 코털 삐져나온 걸 보면 확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공중화장실 사용 후 나오면서 바지 지퍼 올리는 모습도, 사람 많은 데서 큰 소리 내며 코 푸는 것도 참 보기 싫다.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재미없는데 ‘내가 젊었을 땐 이랬는데 너희는 ?’ 이러면서 혼자 떠드는 것도 꼴불견이다”(이강현·25·대학생). 아저씨 하면 여성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체로 이렇다.

불룩 나온 배에 기름기 흐르는 얼굴, 감각이라곤 눈을 비벼도 찾기 힘든 옷차림,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한때 아줌마를 ‘제3의 성(性)’이라며 희화화하기도 했지만 ‘아저씨 같다’는 표현도 결코 칭찬은 아니다.그런데 최근 중년 남자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가꿀 줄 알고 외모와 옷차림에 돈을 쓰는 이른바 ‘미(美)중년’이 등장한 것이다. ‘꽃미남’에 빗대어 ‘꽃중년’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더 이상 늘어진 뱃살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는다. 헬스클럽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다듬는 건 기본이다. 성형외과에 가서 점이나 검버섯을 제거하고 처진 눈가를 올리기 위해 눈꺼풀 성형을 하거나 이마에 보톡스를 맞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들 덕분에 남성용 화장품과 고가의 청바지 프리미엄진 등의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무역업을 하는 이대성(50)씨. 그는 월 수입의 10%가량을 자기관리에 쓴다. 매일같이 러닝머신에서 뛰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등산을 간다. 사무실엔 아령을 두고 점심식사 후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한다. 흰머리가 보일세라 한 달에 한 번은 꼭 염색을 한다. 아내가 권하는 마스크팩도 못 이기는 척 붙인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봤는데 배불뚝이에 옷도 대충 입은 추레한 아저씨가 있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안 되려고 나한테 꾸준히 투자한다. 외모를 가꾸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실제로 거래처 직원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는 박철(42)씨도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애쓴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피부 마사지를 받는다. 청바지를 주로 입는데, 가능한 한 몸에 딱 붙는 걸 고른다. “폼 난다”는 이유로 드럼도 배운다.주부 심민숙(45)씨도 남자가 스스로 가꾸는 걸 지지한다. “남편 나이가 올해로 51세다. 머리도 꽤 벗겨졌고 배도 나올 만큼 나왔다. 점점 망가지는 게 보기 싫다. 얼마 전 모발이식을 시켰다. 피부과도 종종 데리고 간다. 동창 모임 간다고 하면 얼굴에 비비크림을 발라준다. 난 싼 옷 입어도 남편은 비싼 옷 입히려고 애쓴다.”

점·검버섯 빼고 식스팩 만들고

아저씨와 미중년을 가르는 기준은 자기관리 여부다. 미중년은 옷과 액세서리, IT기기 등의 구입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와인과 커피, 악기를 배운다. 관심사가 다양해지니 자연스레 화제도 풍성해진다. 자신보다 젊은 연령층을 만나도 대화가 한결 수월하다. “예전에 일했던 회사 차장님은 영락없는 아저씨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인천에서 하는 록페스티벌에 간다면서 젊은 애들도 잘 모르는 인디밴드 이름을 줄줄 얘기했다. 갑자기 그분이 달라 보였다.”(윤은경·25)
미중년의 등장 배경은 뭘까. 무엇보다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고 싶어하는 강렬한 심리가 엿보인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를 쓴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이를 “아저씨가 ‘지나간 청춘’이라면 미중년은 ‘현존하는 청춘’”이라고 말한다. 노화를 늦추고 젊음의 흔적을 붙들어놓으려는 욕망이 집단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란 얘기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꽃중년 4인방. 왼쪽부터배우 장동건ㆍ김수로ㆍ이종혁ㆍ김민종.
한때 유행했던 ‘싱글로 보이는 기혼여성’을 일컫는 ‘미시족’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임상심리 전문가 김선희(김선희부부클리닉 원장)씨는 “미시족과 미중년 모두 ‘내가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생산적이야’라고 외치는 무의식적 구애 활동”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아저씨란 단어엔 ‘관심 끌기’의 개념이 없다. 아름다움을 통해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것이었는데 여기에 남자들이 눈을 돌렸다”고 덧붙였다.

TV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는 이런 충동을 부추긴다. 채널만 돌리면 미중년 배우 일색이다.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 등은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외모와 관록으로 현실의 아저씨들을 자극한다. 26일부터 방영되는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아예 ‘미중년의 멜로’를 표방한다. 장동건을 위시해 김민종·김수로·이종혁 등 ‘꽃중년 4인방’을 캐스팅했다. 예전 같았으면 주인공의 삼촌이나 동네 아저씨로 나왔을 연령인데 멜로물의 당당한 주역이다.

충무로도 40대 중반 배우들이 주축이다. ‘의형제’ ‘푸른 소금’의 송강호, ‘완득이’ ‘전우치’의 김윤석 등이 원숙한 연기로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말의 ‘세시봉 열풍’도 미중년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곱게 늙은’ 송창식·윤형주·김세환·이장희 등 추억의 가수들을 보며 중년층 시청자들은 ‘나도 저런 단아한 모습을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부러움을 느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남자의 자격’이 달라진 점도 미중년을 만들어낸 요인이다. 정덕현씨는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남자의 스펙은 체력과 능력(학벌, 좋은 직업)이었다. 탈(脫)산업사회에서 정보문화사회로 넘어가는 지금은 외모나 스타일, 매너 등 외적 요소로 바뀌었다. 능력의 시대에서 매력의 시대가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미중년에 환호하는 30∼40대 여성들은 미중년의 요소로 매너와 패션 등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를 꼽는다. “자기 일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가 중년 남자를 달리 보이게 한다”(유지희·30), “나이 먹은 만큼 시야가 넓어져 웬만한 일은 웃어넘길 수 있는 포용력이 멋진 중년의 덕목인 것 같다”(김미성·32). 나이 먹어도 인기 있는 아저씨가 되고 싶다면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다.

드라마 주연 맡는 꽃중년 4인방

최근엔 늘어나는 미중년 인구를 겨냥해 잡지도 나왔다. 일본잡지 ‘레옹’ 한국판이 3월 창간호를 낸 것. 일본에서 이 잡지는 아저씨 같지 않은 중년남자를 일컫는 ‘레옹족(族)’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꾸미고 싶어하는 40∼50대 남성’을 주 독자층으로 한다. 몇 페이지만 넘겨봐도 명품 브랜드의 양복과 시계, 고가의 구두 등에 눈이 어지럽다.이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미중년이 될 수 있는 건가 싶은 부담감을 남자들이 느낄 법도 하다. 자영업을 하는 김종엽(54)씨는 “돈 들여 얼굴 가꾸는 건 내 취향도 아니고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젊게 보이는 데 집착한 나머지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근육을 만들려고 무리하게 역기를 들다 어깨 근육이 찢어진다든지 허리가 삐끗한다든지 하는 게 한 예다. 소비주의 일변도로 흐를 가능성도 높다. 전문가가 미중년 현상이 외모 가꾸기에 국한되는 걸 경계하는 이유다.
임상심리 전문가 김선희씨는 “성숙한 중년은 내 인생을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태도는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를 직시하고 받아들인 후 나이에 맞게 변화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충고했다. 세계적 남성 패션브랜드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셰는 “영원한 젊음은 없다. 영원한 우아함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원한 우아함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한국의 미중년에게 던져진 숙제다.

기선민·홍상지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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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