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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에게 3000만원 뇌물 검찰이 압박해 허위 증언한 것”

2003년 4월 24일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수사관들이 관련회사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2011년 4월 11일 Q씨는 집에서 신문을 읽다 숨을 멈췄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씨에 대한 기사였다. 한씨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부인을 간호하기 위해 정치를 접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눈앞에 8년 전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라종금 회장이었던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나라종금이 퇴출되면서 검찰에 구속됐다. 불법대출, 배임 등의 혐의였다. 수감생활 도중 그는 갑자기 검찰에 불려갔다. 검찰은 2000년 나라종금이 퇴출될 때 한 전 실장에게 3000만원을 주고 퇴출 저지 로비를 한 사실을 시인하라고 요구했다. Q씨는 2003년 한 전 실장의 뇌물수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했다. 거기서 한 전 실장의 뇌물수수를 추궁하는 검사에게 얼버무리기식 증언을 했다. 뇌물수수가 사실일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돈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지만 한 전 실장은 유죄가 인정됐고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요즘 재판부 분위기라면 전혀 다른 판결이 나왔을 수 있지만 당시는 그게 현실이었다.

그 재판 이후 Q씨는 한 전 실장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에 복귀해서도 단 하루도 맘이 편해본 적이 없었다. Q씨는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한 전 실장의 부인이 암에 걸린 것도 어쩌면 그 후유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광옥 선배님 귀하.’ 서울 J고등학교 선후배 간이었기에 선배님이란 호칭을 썼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0년 1월 선배님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계실 때 나라종금의 A 사장이 당시 회장이던 저와 함께 비서실장 공관을 방문해 현금 3000만원을 공관에 두고 왔다고 2003년에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결국 그 건으로 (선배님은) 유죄를 받으셨고 후배로서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중략) 2004년 초 사무실로 (A사장에게) 돈을 마련해줬다고 증언했던 부사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확인했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누가 만든 각본인지 모르지만 검찰의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수님이 아직 건강하실 때 제가 아는 진실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는 것이 저의 인간적인 도리인 것 같습니다.”

한 전 실장의 부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 편지를 차마 보내지 못했다. 책상 서랍 속에 그냥 묻어뒀다. 가족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상의했더니 한결같이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왜 다시 평지풍파를 만들려고 하느냐”며 펄쩍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월 20일 그는 그 편지를 한 전 실장에게 보냈다. 설을 사흘 앞두고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이걸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결심에서였다. 이후 상황은 Q씨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굴러갔다. 한 전 실장이 이 편지를 근거로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유일한 증거였던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이 깨졌으니 자신의 무죄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수감 중이던 나라종금 사장 A씨가 느닷없이 몇년 전에 3000만원을 줬다고 증언해 전 정권의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속된 사건. 그러다 8년이 지난 뒤 핵심 당사자가 “증언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양심선언을 했지만 언론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사건. 공소기록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사건.

한 전 실장이 서울고법에 재심신청을 했다는 짧은 보도가 나간 뒤 중앙SUNDAY는 2003년 한 전 실장의 뇌물수수 사건 수사를 재검토해 봤다.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그걸 확인하려고 Q씨를 찾아갔지만 그는 처음엔 인터뷰를 거부했다. “만일 다시 재판이 열리면 거기서 모든 걸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익명을 전제로 진술을 시작했다. 관련자 취재와 Q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2003년 나라종금 퇴출 로비 사건을 재구성했다. 거기엔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냈던 기업인의 운명, 정권교체기 검찰의 압박수사,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재판부 분위기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명문 Y대를 졸업한 Q씨는 1990년대 초 30대의 나이에 현금 3000만원을 들고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외국 청바지에 대항하는 순수 국내산 청바지 브랜드를 개발한 것이다. 청바지를 한 해에 100만 장 이상씩 팔면서 몇 년 사이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됐다. 97년 11월 그는 막강한 자금력을 토대로 종합금융회사인 나라종금을 인수했다. 하지만 인수계약서에 사인을 한 지 나흘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다. 수많은 은행과 종금사들의 외화결제가 막혀버렸다. Q씨가 회사를 인수한 지 열흘 만에 나라종금은 영업정지를 당했다.

98년 4월 금융감독위가 나라종금의 영업재개를 결정했다. 금융에 문외한이었던 Q씨는 위기극복을 위해 종금사 출신의 A씨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99년 8월 대우그룹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대우와 거래 비중이 높았던 나라종금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Q씨는 거기에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우가 파산할 것 같아 대우의 콜(단기자금거래) 중개를 5일간 중단했어요. 그러자 금융감독원에서 자신들이 보장할 테니 거래를 계속하라는 겁니다. 대한투자신탁이 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은행이 나라종금 발행 어음을 매입하면, 나라종금이 대우채를 매입하는 3자 거래의 방법도 제시하면서요. 정부가 그렇게 압박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대우의 부실은 계속 커졌고 부실채권 회수를 위해 대한투신이 나라종금에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그해 11월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나라종금 A사장은 Q씨에게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청와대밖에 없다”며 Q씨의 고교 선배인 한광옥 비서실장을 만나보자고 요구했다. 2000년 1월 10일 Q씨는 나라종금 서울 명동사옥에서 A사장과 만나 자신의 차를 타고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으로 갔다. 두 사람은 보안검색을 마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1층 응접실에서 한 전 실장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금융을 잘 모르는데 이기호 경제수석과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으니 그때 와서 설명하라”는 얘기를 듣고 다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저녁에 다시 공관을 찾아와 2층으로 가서 이기호 수석을 소개받았다. A사장이 나라종금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이 수석은 “내일 청와대 비서실로 와서 담당 실무자 앞에서 설명하라”고 했다. A사장은 다음날 청와대를 찾아가 이 수석과 J국장을 함께 만났다. 하지만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답변만 들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 정부는 나라종금 영업정지를 발표했다.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종금사 부실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다.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 2001년 12월 대검찰청에 공적자금비리 합동수사본부가 세워졌다. Q씨와 A사장은 2002년 6월 분식회계와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한데 2002년 대선과 맞물리면서 사건은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제1정조위원장이 “나라종금이 여권에 로비를 한 정황이 있는데 검찰이 그걸 은폐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측근인 안희정씨와 염동연씨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이었다. Q씨는 “안희정씨는 제 동생 대학동기고 염동연씨는 제 고교 선배입니다. 안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생수사업을 하다 실패했다고 해서 99년에 2억원을 도와줬는데, 그때 노 전 대통령은 아무런 힘이 없을 때니 대가성이 있을 수 없죠. 고교 선배 염동연씨도 99년에 5000만원을 도와줬습니다. 그분들이 다 아무런 권력이 없을 때입니다. 그분들뿐 아니라 제가 사업이 성공한 뒤 후배 30명에게 매달 돈을 줘 왔어요. 너무 어렵게들 살기에.”

하지만 야당이 공세를 펴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3월 “사건을 재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징역 4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던 Q씨는 갑자기 다시 소환됐다. 질병 때문에 풀려났던 A사장도 재수감됐다. 한광옥 전 실장에게 3000만원을 줬다는 진술은 A사장이 처음 했다. 이 진술을 근거로 검찰은 한 전 실장을 소환해 5월 14일 구속했다. 한 전 실장은 완강히 부인했지만 별수 없었다. 교도소 기록에 따르면 Q씨와 A사장은 한 전 실장의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두 달 동안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검찰로 불려가 매일 10시간 이상씩 조사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한 전 실장의 수뢰 사실을 증언한 A사장은 한 전 실장이 구속된 뒤 다시 질병을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돼 풀려났다.

한 전 실장의 측근은 “한 전 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려는 걸 비난하는 성명을 낸 지 2주일 후 갑자기 검찰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소환 했다”며 정치적 배경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나라종금 쪽 인사들은 “국회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이 특검을 하겠다고 나서니까 검찰은 과거 정권의 거물을 잡아넣어야 야당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A사장이 한 전 실장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지만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Q씨가 보충 증인으로 소환됐다. A사장이 쇼핑백에 3000만원을 담아 Q씨와 함께 한 전 실장을 방문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사장과 Q씨의 운전기사들은 “쇼핑백을 본 적이 없다”고 상반된 증언을 하는 등 범죄 입증이 힘든 상황이었다.

8월 7일 오후에 이뤄진 한광옥 뇌물사건 2차 공판정. 검사가 “A사장이 돈이 든 쇼핑백을 들고 공관에 갔고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쇼핑백을 건네줬던 것으로 기억되지요?”라고 물었다. Q씨는 “예”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다음 변호사 심문 때는 “A사장이 3000만원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차 안에서 들었느냐”고 묻자 “차량 안이어서 기사가 있었기 때문에 말을 했다면 내 귀에 대고 했을 텐데 100%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애매하게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Q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오전에 염동연 의원의 증인으로도 불려 나갔었다. 거기서 염 의원에게 대가성 없이 후원금으로 돈을 줬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염 의원은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데 증언이 끝나자 교도관이 나를 검사 대기실로 데려갔다. 거기서 공판 검사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난리를 피웠다.” 검사는 그 자리에 재판을 방청하러 온 Q씨의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회사 관계자들까지 불러들였다. 회사 관계자도 “그렇게 검사님한테 협조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한다. 당신 혼자 고고하게 살려는 거냐”고 거들었다. 이런 심리적 압박 때문에 Q씨는 오후에 한 전 실장 사건 증인으로 나갔을 때는 대놓고 “아니다, 돈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Q씨는 당시 검찰에서 어떤 압박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기 거부했다. “이제 와서 누굴 혼내자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한 전 실장께 미안해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Q씨의 변호사 L씨는 “Q씨의 아들이 청각장애가 있어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검찰이 부인을 출국금지시켜 미국에 못 가도록 하겠다고 했고, 형 대신 계열사를 운영하던 동생도 조사하겠다고 해 심리적 압박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L변호사는 또 “A사장은 재산 해외 도피 혐의로 검찰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검찰의 요구대로 진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Q씨는 2004년 초 집행유예로 풀려 난 뒤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A사장이 J부사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아 그걸 저와 함께 한 전 실장에게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풀려난 뒤 정말 나 모르게 돈을 준 게 있었나 싶어 J부사장을 불렀습니다. 그때 3000만원을 A사장에게 갖다준 적이 있냐고 물으니까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건 당시부터 Q씨의 운전기사를 하고 있는 P씨는 검찰에서도 “돈이 든 쇼핑백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지금도 똑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A사장과 J부사장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진술을 받지 못했다.

Q씨는 “당시 ‘차 안에서 A사장이 당신에게 3000만원을 준비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검찰이 물었을 때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못했던 게 그동안 가슴에 한이 됐었다. 늦었지만 한 전 실장이 진실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때 준재벌 반열에 올랐던 Q씨는 석방된 뒤 대중 음식점을 차려 성공했고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는 “내 얘기가 정치적으로 해석돼 또다시 논란이 되는 건 정말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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