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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에게 3000만원 뇌물 검찰이 압박해 허위 증언한 것”

2011년 4월 11일 Q씨는 집에서 신문을 읽다 숨을 멈췄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씨에 대한 기사였다. 한씨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부인을 간호하기 위해 정치를 접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눈앞에 8년 전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라종금 회장이었던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나라종금이 퇴출되면서 검찰에 구속됐다. 불법대출, 배임 등의 혐의였다. 수감생활 도중 그는 갑자기 검찰에 불려갔다. 검찰은 2000년 나라종금이 퇴출될 때 한 전 실장에게 3000만원을 주고 퇴출 저지 로비를 한 사실을 시인하라고 요구했다. Q씨는 2003년 한 전 실장의 뇌물수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했다. 거기서 한 전 실장의 뇌물수수를 추궁하는 검사에게 얼버무리기식 증언을 했다. 뇌물수수가 사실일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돈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지만 한 전 실장은 유죄가 인정됐고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요즘 재판부 분위기라면 전혀 다른 판결이 나왔을 수 있지만 당시는 그게 현실이었다.

그 재판 이후 Q씨는 한 전 실장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에 복귀해서도 단 하루도 맘이 편해본 적이 없었다. Q씨는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한 전 실장의 부인이 암에 걸린 것도 어쩌면 그 후유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광옥 선배님 귀하.’ 서울 J고등학교 선후배 간이었기에 선배님이란 호칭을 썼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0년 1월 선배님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계실 때 나라종금의 A 사장이 당시 회장이던 저와 함께 비서실장 공관을 방문해 현금 3000만원을 공관에 두고 왔다고 2003년에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결국 그 건으로 (선배님은) 유죄를 받으셨고 후배로서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중략) 2004년 초 사무실로 (A사장에게) 돈을 마련해줬다고 증언했던 부사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확인했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누가 만든 각본인지 모르지만 검찰의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수님이 아직 건강하실 때 제가 아는 진실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는 것이 저의 인간적인 도리인 것 같습니다.”

한 전 실장의 부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 편지를 차마 보내지 못했다. 책상 서랍 속에 그냥 묻어뒀다. 가족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상의했더니 한결같이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왜 다시 평지풍파를 만들려고 하느냐”며 펄쩍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월 20일 그는 그 편지를 한 전 실장에게 보냈다. 설을 사흘 앞두고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이걸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결심에서였다. 이후 상황은 Q씨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굴러갔다. 한 전 실장이 이 편지를 근거로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유일한 증거였던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이 깨졌으니 자신의 무죄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수감 중이던 나라종금 사장 A씨가 느닷없이 몇년 전에 3000만원을 줬다고 증언해 전 정권의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속된 사건. 그러다 8년이 지난 뒤 핵심 당사자가 “증언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양심선언을 했지만 언론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사건. 공소기록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사건.

한 전 실장이 서울고법에 재심신청을 했다는 짧은 보도가 나간 뒤 중앙SUNDAY는 2003년 한 전 실장의 뇌물수수 사건 수사를 재검토해 봤다.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그걸 확인하려고 Q씨를 찾아갔지만 그는 처음엔 인터뷰를 거부했다. “만일 다시 재판이 열리면 거기서 모든 걸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익명을 전제로 진술을 시작했다. 관련자 취재와 Q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2003년 나라종금 퇴출 로비 사건을 재구성했다. 거기엔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냈던 기업인의 운명, 정권교체기 검찰의 압박수사,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재판부 분위기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3p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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