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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을 종갓집 삼는 세력을 껴안는 게 문제”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4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의 사무실에서 비례대표 경선 조작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주대환(58)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노동 계급이 주도하는 좌파 정당을 한국 정치에 도입하려 시도했던 학생운동권·노동운동가 출신이다. 20년 전인 1992년에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진보정당 창설을 일찌감치 시도했다. 한국노동당은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2000년엔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해 민노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서울대 철학과(종교학 전공) 재학 시절인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네 차례나 구속됐다. 지금도 그는 “1인1표의 민주주의가 1주(株)1표의 자본주의에 앞서며, 국가가 적극 나서 시장에 개입하고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 신념에 투철하다. 4일 그를 만나 비례대표 경선 조작 사건이 벌어진 통합진보당에 대해 묻자 그는 “우리가 선(善)이니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더욱 큰 문제는 진보나 민주와 전혀 상관없는 믿음을 가진 집단을 통합진보당이 안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통합진보당 내 비례대표 경선 조작을 어떻게 보나.
“그 사람들(당권파)의 사고 방식이란 게 흑백논리다. 자신들은 선하니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생각이 깔려 있다. 우리 정치에선 나는 무엇을 해도 옳고, 상대는 무엇을 해도 그르다는 진영 논리가 작동하는 게 문제인데 그분들이 특별히 더 그렇다. 약간 종교집단 비슷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비례대표 경선 조작 사태는 왜 발생했나.
“당권을 장악하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개념이 없어서 생긴 것이다.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선 어떤 절차를 밟아도 된다는 의식이 작용한 것 아닌가.”

-2002년 이른바 용산지구당 사태를 거론하며 자주파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 친구들이 (민주노동당 시절) 당을 장악하는 방식이 지구당부터 하나하나 접수해 들어가는 것이다. 용산구로 당원을 이사시켜 지구당원을 만든 뒤엔 지구당위원장 경선에서 이기는데, 문제는 지구당을 확보하면 대다수는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위장전입 비슷한 방식으로 조직을 동원해서 지구당을 하나하나 챙겨간다.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했을 땐 그 친구들(자주파)이 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다수가 됐다. 나는 노동자가 대거 참여하는 대중정당이 되면 이런 정파가 희석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런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에선 당권파의 패권주의로 비판한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통합진보당에서 드러난 문제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패권주의는 ‘독식’이란 측면에서, 즉 ‘다수파가 다 해먹는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 전반의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진보ㆍ민주라고 볼 수 없는 집단을 통합진보당이 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폭탄을 껴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부러건 아니건 그런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집단을 의미하나.
“북한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게 어떻게 민주고, 봉건 왕조에 대해 침묵하는데 어떻게 진보일 수가 있나. 이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 약소국 국민으로 느끼는 열등감 등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서 북한을 이상향 또는 마음의 고향, 또는 정통성과 자존심이 있는 종갓집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엔 이런 모순은 없겠지’라면서 없다고 믿어버리는 그런 종교적인 신앙 비슷하다. 실제 북한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남한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상황이 그곳엔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게 주사파 아닌가.
“현재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전체를 주사파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과거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전대협ㆍ한총련이 전성기일 때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수천 명씩 쏟아져 나와 집단을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좀 변했을 수도 있다. 핵심은 여전히 주사파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론 친북반미 민족주의자들이라고 말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어쨌거나 통합진보당을 좌지우지하는 건 경기동부연합 등 조직의 핵심이고, 그들은 주사파라고 해야겠다. 일반 국민들이야 그냥 진보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선 다른 얘기를 한다. 어떤 순간이 오면 자신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기도 한다. 그게 북한 체제가 거론될 때다. 북한 체제를 비판해야 할 경우 ‘남의 나라인데 왜 비판하나’ ‘원인은 미국에 있다’ 이러면서 온갖 논리를 동원해 저지한다. 그러다 다들 지치면 ‘다수결로 합시다’라는 식이다. 당내에선 그쪽이 다수이니까.”
(주 공동대표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겪었던 북한을 둘러싼 자주파와의 갈등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꺼려 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인사들의 실명을 언론에 거론하는 데 대해 부담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은 데 대해 ‘우리가 비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얘기’란 해명도 있었다.
“그게 온갖 핑계를 대는 것이다. (비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이 사람들은 평소엔 멀쩡하다. 북한 체제 비판이란 성역을 건드리는 경우만 제외하면 유연하고 현실적이기조차 하다. 지방의회 등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보면 오히려 성실하고 지역 내 평가가 괜찮은 사람도 있다. 막상 만나 보면 생각보다 전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평소엔 예의도 바르고, 선거에 나와선 진보적인 얘기를 잘도 하는데 북한 체제 비판만큼은 가로막고 나선다. 이는 자기들의 성역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친북주의가 등장한 원인은 뭔가.
“1980년대 학생운동이 토양이다. 전두환 정권이란 시대 상황이 배경이다. 전두환 정권이 자연스럽게 민주화로 진행되는 흐름을 막으면서 학생운동이 비정상적으로 과잉 성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주체사상까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니 군사독재정권을 무리하게 연장한 뒤 나타난 역사적 업보라고 봐야 한다.”

-정책위의장 시절 이른바 자주파와 갈등이 많았다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하긴 그렇고…. 많이 공격받았다. 내가 정책위의장에 선출됐던 2004년엔 그 친구들이 이미 다수였다. 솔직히 민주노동당에서 이들을 상대로 당내 선거에서 승리한 경우는 내가 유일할 것이다. 당시 당내에선 중립으로 평가받았던 민주노총 인사들이 나를 도왔기 때문에 정책위의장 경선에서 이겼다.”

-국정원이 간첩 사건으로 발표한 일심회 사건을 어떻게 보나.
“2006년 일심회 사건이 터졌다. 민주노동당의 사무부총장은 임명직 당직에선 고위급 핵심 직책인데 이 친구가 중국 어딘가에서 북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일단 당 차원에서 조사를 해서 제명시킬 일이었다. 게다가 무슨 당직 간부들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북측에) 줬다고 하더라. 다른 정당에 우리 정보를 넘겼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인데 북쪽에 있는 당에 보고를 했다는 말 아닌가.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느껴 비판에 나섰는데 나중에 보니 나 혼자 떠들고 있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 당시 당을 떠난 이유는 뭔가.
“영국 노동당과 같은 진보 정당을 꿈꿨지만 양대 정당이 오랜 기간 자리했던 우리 상황에서 제3당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을 확보하며 기회가 왔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일단 진보 정당을 만들면 소박한 노동자의 정서가 지배하는 대중 정당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도 이유다. 정파가 싸우는 운동권 정당이 되고 노동자들은 당비나 내주는 정당이 되니 말이다.”
(인터뷰 말미에 주 공동대표는 화제를 야권 전체로 돌렸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한 A4 용지 3장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현재의 야권에는 “누구도 친북 민족주의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없지만 야권 전반엔 안개처럼, 지성을 마비시키는 가스처럼 흐릿하게 친북 민족주의 정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가 제대로 경쟁하며 발전하려면 “친북 민족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가 야권의 철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야권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는 주체사상이라는 염증에 시달렸다.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었지만 고질병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 종기를 거의 다 극복해 완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그 잔재가 아직 흔적처럼 남아있다. 그게 친북민족주의 분위기다. 이번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을 예로 들자. 미래 복지를 얘기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가 공천에서 탈락한 반면 방북했던 임수경씨가 공천을 받는 게 그런 정서 때문 아닌가. 야권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는 야권에선 소수 아닌가.
“야권의 중견인 486세대 정치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친북민족주의 정서를 워낙 강하게 비판하다 보니 우리는 분열주의자로 비춰진다. 그러나 친북민족주의의 극복 없이 정권교체는 어렵다. 또 보수 진영에선 친북 문제가 좋은 핑계가 되니 ‘진보는 친북’이라고 비판만 한다. 그러면서 진화와 혁신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친북민족주의는 진보만이 아니라 보수의 발전도 지체시키고 있다. 더구나 통일 후엔 친북민족주의는 극우적 성향의 민족주의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내 주체사상의 잔재와 결합해 외국인 혐오, 극단적인 민족주의라는 변종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야권은 사회민주주의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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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