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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차오 공항 마당서 ‘한·중 합작’ 자전거 조립 쇼

1 야외 사생을 하고 있는 쑤저우(蘇州) 제6고교 미술반 학생들과 마주쳤다. 자연을 옮기고 있는 그들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2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을 빠져나갈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환영 아치. 3 전장(鎭江)에서 만난 사람 좋게 생긴 택시기사. 뒤에 자전거 택시가 보인다. 4 여행 닷새째에 먹은 찐만두. 자전거를 타니 뭘 먹더라도 칼로리 소모는 자신 있다.
“좋은 자전거인가 봐요?”
탑승 수속 카운터에 자전거 상자를 올려놓자 의외의 말을 들었다. 일반석의 짐은 20㎏까지 허용된다. 초과해도 추가요금을 내면 되지만 중량은 여행의 자세와 관계가 있다. 상자 속에 있는 자전거를 어떻게 품평할 수 있지? 의아했는데 그가 덧붙였다.

“21㎏이네요. 그 정도면 추가요금 안 내셔도 돼요. 다른 짐도 같이 부치시죠?”
좋은 자전거여서 무게가 덜 나가지 않느냐는 뜻. 계체량에 통과한 복서처럼 흥분됐다. 이 자전거를 준 김정호씨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산악자전거여서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 자전거 무게보다 지난 여행에서 교훈을 얻어 욕심 감량에 성공한 것이다. 장기여행에서도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짐 싸는 건 이사와 다를 바 없다. 여행이 좋은 것은 불가피하게 필수품들을 간추려낸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그 무게의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인생도 여행과 같다면 갖고 있는 게 많을수록 짐스러울 수 있다. 미국 여행에서는 짐만 40㎏이 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노트북과 카메라 등등을 얹어도 자전거를 포함해 25㎏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5 서울에서 싣고 온 산악용 자전거. 미국 동서횡단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체득한 교훈대로 이번엔 짐무게를 대폭 줄였다.
짐이 적어서 겪는 고충도 있다. 예컨대 패드가 달린 자전거팬츠를 두 벌밖에 안 쌌다. 매일 저녁 고된 주행을 마치면 쉴 틈 없이 그날 입은 옷부터 세탁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니면 며칠 동안 더러움을 견디거나. 그게 꼭 나쁘지는 않다. 보다 규칙적 생활을 하거나 청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웬만하면 불만이 없게 된다. 어쨌든 미리 환전해놓은 위안(元)화를 집에 놔두고 와서 아내의 잔소리를 들은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여행 준비 막판에는 이 생각에 집중했다. 공항에서 자전거를 타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냥 숙소까지 차에 싣고 가서 편안하게 시작하지 그래? 여러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나는 고집했다. 자전거를 타고 내 마음대로 어디든 가고 싶었다.

공항도 상하이(上海) 푸둥(浦東)공항 대신 시내 근처 훙차오(虹橋) 국제공항을 선택했고 구글의 위성사진으로 공항의 진출입 도로를 샅샅이 살펴봤지만 잘 모르겠다. 카페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에 질문을 올렸더니 득달같이 댓글이 달렸다. ID ‘참외아빠’님은 주차장부터, ‘산돌’님은 20, 30m 떨어진 지하철 역 근처에서부터 자전거를 타면 된다고 조언했다. 중국 전역을 자전거로 누빈 ‘탱이’님한테 쪽지를 보냈더니 “중국은 자전거로 못 가는 곳이 없다”는 호호탕탕한 회신이 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조립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일대를 돌면서 장소를 물색하다가 도착장 출구가 한산해 보여 판을 벌였다. 청소 아주머니가 쳐다보는데 자전거 상자를 어디다 버리는지 감시하는 것 같다.
가지고 가라면 싣고 갈 수도 없고 난감하다. 그의 눈빛을 외면하고 일단 상자의 테이프를 뜯자 아주머니가 금세 다가와 소리를 지른다(여기 사람들이 소리 지른다고 화가 났다거나 싸우자는 게 아니라는 건 후에 알게 됐다). 다행히 ‘렁디아오’라는 말을 알아들었다. 버리는 거냐는 뜻. 그렇다고 했더니 상자를 잡아주며 자전거를 뽑아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것만도 너무 고마운 일인데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도우미로 나섰다. 차체에 바퀴를 묶어둔 플라스틱 끈을 풀지 못하자 가위를 가져와 잘라줬다. 그는 물론 쿤산(昆山)행 버스표를 팔던 아주머니도, 지나가던 행인들도 모두 “진짜 비행기로 싣고 온 거야? 그리고 여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물었다.

나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공구를 꺼냈다. 푸둥 공항과 훙차오 제2공항에 밀려 동네 공항으로 쭈그러든 훙차오 국제공항에 모처럼 장이 섰다. 한국 여행자가 금속들을 순식간에 연결해서 자전거로 소생시키는 신공에 찬탄할 준비를 갖췄다. 앞바퀴를 결합하고 안장을 꽂을 때까지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간단한 작업인 페달 넣기가 늘 애를 먹인다. 홈에 넣고 자전거 진행 방향과 반대로 돌리기만 하면 쑥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왼쪽 페달을 넣어보려다 안 되면 오른쪽 페달을 시도하고, 또 그 반대로 해보고…. 마치 K팝스타 오디션 무대에 선 것처럼 ‘심사위원’들의 눈치가 보였다.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가방 거치대부터 달기로 순서를 바꿨다. 구경꾼 일부는 창틀에 걸터앉았고 일부는 기적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났다. 내가 거치대의 너트를 끼워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청소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기둥에 세웠다. 한마디 하시는데 “지쓸러(조바심 나 죽겠어)” 그러더니 바닥에 있는 왼쪽 페달을 주워들었다. 버스 매표 아주머니도 질세라 오른쪽 페달을 쥐었다.

기계치인 나는 나사의 진행 방향을 외울 수 없다. 평상시에는 양쪽으로 다 돌려보면 수수께끼가 풀리지만 너트를 넣다가 중간에 멈출 때가 문제다. 더 이상 안 들어가는 걸 보면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하나? 그런데 이미 너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시 빼어내는 데 성공하는가 싶으면 헛돌고, 반대로 조이면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이 자전거를 분해해서 상자에 넣어 준 누리 바이크의 염규태씨는 8㎜ 스패너를 넣어주면서 이걸로 돌리면 된다고 했는데 안 된다.

그사이 두 사람은 나란히 페달을 끼웠다. 고맙기도, 무참하기도 했지만 대인배처럼 웃었다. 내가 할 수도 있는데 기회를 준 거처럼. 그 자존심을 유지하려면 이 너트를 죄어야 하는데…갑자기 볼트와 너트를 발명한 사람이 누군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나사를 발명한 사람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너트와 볼트를 발명한 사람은 누군지 분명치 않은 것 같다. 미국 야후의 앤서즈(문답형 지식검색사이트)에는 믿고 싶은 그럴듯한 속설이 나와 있다. 런던에 살던 너트가 1736년 너트를 발명했지만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 죽었는데 1861년에 볼트가 볼트를 발명하자 너트의 후손들이 찾아가 볼트와 너트가 한 쌍을 이루게 됐다는….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볼트와 너트의 결합에 125년이 걸렸다는 말이 나한테는 그럴싸해 보인다.

아저씨들도 달려들어서 핸들바의 조향장치를 조정하고, 핸들바를 일직선으로 정렬하는가 하면 안장의 고저(高低)를 맞추면서 구경꾼들은 어느새 한중(韓中)공동 프로젝트 멤버가 됐다. 너트를 넣기 어려웠던 이유는 너트가 손 힘으로 풀기 어려운 풀림방지용이었기 때문. 너트가 아니라 볼트를 돌려야 한다. 풀림방지 너트를 스패너로 잡고 볼트의 헤드를 일자(一字) 드라이버로 돌려야 풀거나 죌 수 있다. 나는 반대로 볼트의 헤드를 스패너에 걸고 풀림방지 너트를 손으로 죄었으니…. 이 사실은 이튿날 국제전화로 염씨한테 물어봐서 알게 됐다.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 오후 4시까지 호텔에 가야 예약이 풀리지 않는다. 서두르니 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 대충 얼기설기 연결한 뒤 다 됐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시험주행을 한번 했고 버스 매표 아주머니도 시승하면서 프로젝트 성공을 기념했다.

중국의 첫 인상이 좋다. 예전 일본 우쓰노미야(宇都宮市) 버스 대합실의 청소 아주머니가 생각이 났다. 승객이 담뱃재를 떨면 아무 말 없이 와서 쓸어가고, 바닥에 먼지 한 티끌 남아날 새가 없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담뱃재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채갔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불만스러운 비질이 느껴지고…. 중국에서는 청소하는 중년 여성의 표정이나 어조에 위축된 기색이 없다. 승객과의 대거리도 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면 중국 기업의 사장과의 만찬 석상에 운전기사도 항상 동석했었다. 후에 쑤저우의 호화 아파트에 간 일이 있는데 경비원과 주민의 관계도 외면적으로는 서로 편안해 보였다. 어쨌든 여기는 노농(勞農)동맹을 기초로 한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다른 성분을 압도하던 그들이었다. 위아래가 한두 번씩 뒤집힌 나라에서는 직업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행 초반이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또 한 가지 말의 특징도 있는 것 같다. 호칭에는 존칭이 있지만 말 자체에 높임말이 없는 중국말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중국말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전거는 비록 삐걱대지만 공항을 자전거로 빠져나가는 기분은 삼삼했다. 이제 나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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