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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의 무상복지는 무모한 꿈”

조용철 기자
그냥 ‘원로’라는 말로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이제 한발 물러서 서재에 머물러도 될 연륜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현장가라서다. 25세 때 시작한 사회학 강의는 5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자발적 복지사회(도서출판 아르케·작은사진)란 책을 내놓은 게 한 달 전인데 또 영문 저술에 몰입해 있다. 4일과 5일에는 엑스포를 앞둔 여수에서 ‘해양환경 재생과 자원봉사’를 주제로 포럼을 주재했다. 고희(古稀)를 맞은 6년 전부터는 소설도 써 중·단편 네 편을 발표했다.

정치권 복지공약 경쟁에 일침, 사회학계 원로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사회학자 김경동(76·사진). 서울대 명예교수,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오래전에 한국사회학회장과 정보사회학회 이사장을 지냈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와 듀크대, 프랑스 국립사회과학대학원을 모두 합쳐 6년 남짓 교수로 재직했다. 2010년에는 세계적 권위의 인명사전 ‘마퀴스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 정년퇴임(2002년) 무렵 5년간 시민사회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시민사회계의 토론문화를 이끌어 왔고, 국내 140여 자원봉사단체들의 협의체인 한국자원봉사협의회 공동대표와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을 맡은 자원봉사계의 좌장이기도 하다.

그를 지난 주말 그의 KAIST 연구실에서 만났다. 막 출간한 저서 자발적 복지사회로 여야 정치권의 복지공약경쟁 모드를 지적하고 나선 그다. 인터뷰에서 그는 최근의 사회현상 가운데 ‘나꼼수’의 저속함에 대해 일갈했다.

-복지가 정치권의 화두인 때 ‘자발적 복지론’을 펴냈습니다.
“4·11 총선에서 각 정파와 후보들은 또 앞다퉈 복지를 얘기했지요. ‘보편적 복지’ ‘무상××’ 등등. 참으로 우려할 일입니다. 복지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고, 모두가 고루 혜택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역사는 그런 무모한 꿈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습니다. 국가가 국민 세금을 걷어 재분배하는, 국가 주도의 복지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재정이 거덜나는 선진 유럽국가들의 고통을 보세요.”

-국가가 어느 수준까지는 복지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북유럽 일부 국가가 아직도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정책을 지속하고는 있지요. 하지만 철저한 이론적 담론과 정치적 숙의를 거쳐 도달한 사회적 합의에 근거해 시작했어요. 또한 지금은 그 한계를 보면서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에 있고요. 그런데 우리는 정치계절만 되면 무조건 듣기 좋은 구호로 국민을 현혹시킵니다.”

-자발적 복지의 개념은 뭡니까.
“국가에 의한 강제적 복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발적 부문이 중심이 되고 국가가 파트너로서 함께하는 모형입니다. 국가가 약간의 인프라로 지원해주면 시민사회가 자발적 자원과 참여를 동원해 추진하는 것이죠.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풍부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이에요. 시민사회가 먼저 이러한 담론을 수준 높은 차원에서 진행하고, 그 과정에 국가가 동참하는 형태지요. 그런 구도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실행할 정책을 구상하는 순서를 밟는 겁니다.”

그는 자발적 복지사회에 그 구체적 내용과 이론적 배경을 담았다. 이 책을 포함해 그가 지금까지 펴낸 저술은 국·영문 합쳐 50권이 넘는다. 단독 저서가 22권인데 그중엔 시집도 두 권 있다.

-12월 대선에 자원봉사를 주요 이슈로 띄우겠다고 얼마 전 밝히셨죠.
“앞으로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민주주의로 나아갈 겁니다. 그런 점에서 자원봉사와 나눔 문화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고,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확산돼야 하지요. 당연히 최고지도자와 참모, 내각책임자도 봉사와 나눔 마인드를 갖춰야 해요. 그래서 선거 후보자들이 자신의 자원봉사 마인드와 봉사·나눔의 경력을 밝혀 평가의 한 기준이 되도록 하려는 겁니다. 자원봉사계의 여러 주체들과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4·11 총선 선거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솔직히 이번엔 기권할 생각도 했어요. 후보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 방법이 거의 없고, 정당들도 정책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보여주지 못했지요. 지나치게 공허한 이념투쟁에만 매달리는 정당정치의 수준에 한심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어요.”

그는 최근 또다시 불거진 정치인의 타락에 대해 “정치인들의 도덕적 마비, 윤리적 타락으로 인한 가장 큰 타격은 나라 꼴이 엉망이 되고 국민의 도덕불감증까지 야기하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도덕사회가 별것 아니라는 게 나의 평소 주장입니다. 일상의 기초질서와 법규를 지키며 남을 의식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데서 도덕사회의 기초가 섭니다. 그런데 툭하면 정치인이 가장 먼저 벗어나버리니….”

-안철수 현상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요.
“지도자라는 사람들 중에 기댈 만한 인물이 없으니 상당한 업적을 쌓은 새로운 인물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면 그리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안 교수는 존경받는 훌륭한 분이지요. 하지만 주목 끌기에 딱 좋은 발언과 행동을 적시에 하고 빠진다거나 스스로를 기묘하게 베일에 감추고 신비화하는 태도로 일관해온 건 아쉽습니다. 거액의 재산 기부가 하필 정치의 계절에 갑작스레 이뤄졌다는 점도 그래요. 구체적인 프로그램 없이, 즉 시급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유용하게 쓰겠다는 고민 없이 그 큰돈을 던진 듯한 인상입니다.”

-안 교수의 입장 표명을 재촉하는 것이군요.
“만약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 특히 대통령을 지향한다면 적어도 국가 장래에 대한 큰 그림을 빨리 국민 앞에 내보이는 게 도리죠. 이념적 지향도 밝히고, 정책적 비전도 조금은 구체적인 언급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검증이라는 절차가 까마득히 남아 있잖아요.”

-나꼼수의 인기를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정보통신 혁명이 가져온 사이버 세계가 헉슬리가 말한 ‘경이로운 신세계(the Brave New World)’인 것이 문제지요. 이러한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고 바람직한지에 대한 어떤 예비지식도, 교육도, 윤리관도 제대로 주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그 멋진 기술을 마음껏 활용하게 되다 보니 제멋대로의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나꼼수라는 말 자체가 이미 비윤리적이고 저속하기 짝이 없는 표현인데 그것이 좋다고 매달려 전파하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 생각돼요. 인터넷 공간만이 아니죠. 각종 대중매체가 비속하고 야비한 문화를 양산하고 있지 않나요. 세상이 전반적으로 그런 문화에 젖어 들면 정말 우스꽝스러워질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까요.
“이런 것이 범죄의 수준이 되면 법률로 단호히 처벌해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보통신 윤리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철저히 시행해야 합니다. 인간의 창의성을 고작 인간성을 망가뜨리는 저속하고 폭력적인 문화 전파에나 마음껏 쓰겠다면 인류문명은 끝이라고 봅니다. 하루 속히 이 문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담론과 해결책 모색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그는 한국사회의 희망이 인성과 창의력 교육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건 기초질서와 일상의 생활법규부터 잘 지키는 시민의식이고, 남을 생각해주는 성숙한 타인의식을 키우는 것이 다음입니다. 무슨 일이든 서로가 자기 일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남 탓을 말아야 합니다. 제발 부모님들, 특히 어머니들, 자녀 교육의 목표를 올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한 출세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답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를 길러 보십시다. 교양을 쌓은 반듯한 인간 말입니다.”

그는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서 역시 서울대 명예교수인 부인 이온죽(68) 여사와 단둘이 산다. 두 딸 모두 독립해 활발히 활동 중인데 김여진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큰딸, 김진 대구지검 검사가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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