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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쓰는 사모곡

살면서 감성을 가장 쉽게 자극하는 단어를 하나만 고른다면 그건 ‘아버지’다. 아·버·지란 세 글자는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넷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제는 어떤 사진 속의 아버지도 나보다는 20년 이상 젊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끔 글로 쓰면서 눈에 안개가 서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해선 조금 달랐다. 아버지와는 12년밖에 못 사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와는 44년을 함께 사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버지만큼 감성적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찌감치 직장생활과 가장 노릇을 했던 내게 아버지 역할에 대한 생각은 절절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어머니에 대해서는 덤덤했던 면이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글도 글제가 ‘어머니’였던 중·고등학교 백일장대회에서 쓴 것과 박사논문 맨 앞장에 어머니께 헌정한다는 짧은 문장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던 몇 달 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혼자가 편하다’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시는 어머니께 반찬을 갖다 드리게 되었다. 늘 집사람과 함께 갔는데 그날따라 혼자 가게 됐다. 나보다는 집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는 어머니와 모처럼 둘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의례적인 인사로 시작했다. 춥지 않으세요. 난방은 괜찮고요. 어디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그러다 무심코 물었다. 쌀은 떨어지기 전에 늘 사다 놓으시죠? 응, 항상 20㎏짜리 사다 놔. 20㎏ 사 갖고 오려면 무거울 텐데 10㎏짜리 사다 드시지요. 그것도 한참 드실 텐데. 쌀독에다 부으려면 힘드시잖아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셨다. 10㎏짜리 사다 쌀독에 부으면 반도 안 차. 쌀독이 비어 있으면 너희 어렸을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싫어. 그래서 항상 20㎏짜리 사다 쌀독이 차게끔 부어 놔. 그러다 쌀독 웬만큼 비기 전에 다시 사다 채워놓고.

나는 어머니의 대답에 그냥 무너져 내렸다. 태연하게 어머니와 더 이야기하다 나왔지만 주차장 차 안에서 한참을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기 힘들었던 시절, 끼니로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 달고 됫박으로 샀던 쌀, 많이 못 들이고 몇 장씩 사다 쓰던 연탄. 그 시절의 어머니를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살며 얻은 내 작은 성취의 모든 뒤안길에는 자신의 삶이라곤 거의 없었던 어머니의 희생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서른셋에 혼자 되시고는 열두 살 장남인 나부터 다섯 살 막내까지 자식 넷을 기른 어머니.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산에 올라 나물 캐서 길에서 좌판을 벌이기도 했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는 철인(鐵人) 같았다. 나와 동생들 앞에서 거의 눈물을 보이시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내가 채 스물도 되기 전 가장으로 생계를 떠맡은 뒤에는 자주 눈물을 보이시곤 했다. 하지만 눈물로도 표현하지 못하고 삭인 힘겨움은 또 얼마나 많으셨을지.

지금은 곁에 계시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보다 더 그리워할 분, 보고 싶을 때면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볼 수 있게 될 분. 앞 일이 눈에 선하다. 품어 가도 반길 어머니 안 계실 때 돼서야 소반 위(盤中) 붉은(早紅) 감 품어갈 생각하며 갖게 될 후회.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 법을 글로만 이해할 뿐 정작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 훗날 막급한 후회의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며칠 뒤면 어버이날이다.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꽃 구경을 꼭 시켜드려야겠다. 꽃을 보면 늘 천진스럽게 웃으시던 늙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젊은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통장에 잔돈 저금하듯이 지금부터라도 그 웃는 모습을 차곡차곡 내 마음에 쌓아야겠다. 그러고는 훗날, 눈을 감아야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때 그 통장에서 하나씩 인출해 써야겠다.

어머니와 대화 나누던 날, 2000쪽에 달하는 『레 미제라블』 완역판 마지막 쪽이 생각났다. 장 발장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생명처럼 아끼며 키웠던 코제트에게 생모(生母)의 이름을 알려주며 유언처럼 이야기한다. “이제 네 어머니 이름을 말해줄 때가 된 것 같구나. 이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라. 이 이름을 입에 올릴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나도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다. 어머니, 아아 나의 어머니.



김동연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재정건전화를 주도했다.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상고 졸업 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행정·입법고시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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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