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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38> 한·중 수교 20년과 안보협력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군사는 전쟁, 외교는 협상이 주요 수단이다. 군사외교는 전쟁과 협상이란 두 모순된 개념에서 출발한다.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한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한·미 동맹과 북·중 혈맹이 중첩돼 있다. 양국 군사외교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는 한·중 국제학술회의가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중 수교 20주년과 안보협력’을 주제로 열렸다. 이날 행사는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소장 김열수)와 한국외국어대(총장 박철)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후원했다.


● 2일 양국 수교 20주 기념 안보협력 주제 학술회의

지난해 7월 15일 중국 베이징 8·1청사(중국 국방부)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이 제8차 한·중 국방장관회담에 앞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양국은 이날 회담에서 고위급 국방전략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7월 14일 오후4시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옆에 자리잡은 인민대회당 1층 접견실. 교통 체증으로 급하게 막 도착한 김관진 국방장관이 입장하자 10여분 전부터 기다리던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한국말로 “환영합니다”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이어진 회담에서 시 부주석은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의 내실을 확충하고, 전략적인 상호신뢰를 증진하며, 민감한 문제는 타당하게 처리해 양국 군사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자고 말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중단된 한·중 군사외교가 복원되는 순간이었다.

한·중 양국 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계 외교의 기적’이란 찬사도 나온다. 하지만, 영역별로 편차가 크다. 군사·안보 분야는 가장 뒤쳐진 분야다. 2일 학술회의에서는 양국간 안보협력을 외교관계 수준에 걸맞도록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중 안보협력이 이젠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을 추구하고 서로 다른 건 남겨 놓음)’에서 벗어나 ‘이중구동(異中求同·서로 다른 것 가운데서 공통점을 추구)’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교 이래 진행된 한·중 군사교류 현황, 한계, 제언의 순으로 지상 중계한다.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중 안보협력’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왼쪽에서 셋째)가 사회를 보고 있다.

● 수교 7년 만에 조성태 국방장관 첫 중국 방문

① 선린우호협력 관계(1992~1997)


한국과 중국의 군사교류는 1993년 주중 한국무관부를 설치하고, 94년 주한 중국무관부가 개설되며 시작됐다. 한국은 현재 준장급 무관과 육·해·공 무관 및 보좌관 등 5~7명을, 중국은 준장급 무관과 보좌관 2~3명을 각각 상대국에 파견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1949년 무관부를 상호 개설했다. 현재 북한은 베이징에 대좌급을, 중국은 평양에 소장급 무관을 파견하고 있다.

박창희 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는 이 시기를 초보적인 상호 탐색기였다고 말한다. 92년과 94년 한국 합참의장이 중국을 방문했지만, 중국의 초청이 아닌 한국 대통령 방중을 수행하는 형식이었다. 중국군 고위 인사의 방한은 전무했다. 군 체육교류와 국방학술대회 역시 비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95년 국방정책실무회의가 열렸지만 이 역시 정례화되지 못했다.

② 협력동반자 관계(1998~2002)

98년 8월 슝광카이(熊光楷)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 이끄는 군사대표단의 방한으로 양국 군의 고위급 교류에 물꼬가 터졌다. 99년 조성태 국방장관이 한국전쟁 이후 장관급인사로선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1월 츠하오톈(遲浩田) 중국 국방부장의 방한, 2001년 12월 김동신 장관이 방중해 양국 국방장관회담을 이어갔다. 이와 함께 군사교육기관 사이의 교류도 시작됐다. 99년 인민해방군 뤄양(洛陽) 외국어학원에 3명의 한국군 장교를 파견해 중국 군사전문가 양성을 추진했다. 중국 국방대학 학생들이 2000년 5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002년에는 중국군 장교의 한국 위탁교육을 계획했으나 중국이 한국내 대만 장교의 위탁교육 문제를 이유로 양국 군사교육교류를 중단시켰다.

한편, 2001년10월 한국 해군사관학교 순양함대가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데 이어 2002년 5월엔 중국 자싱(嘉興)호와 롄윈강(連雲港)호가 인천항에 입항했다. 양국 함정교류의 시작이다. 2002년 9월엔 공군대학 수송기가 최초로 중국을 방문하는 등 다방면의 군사교류와 회담이 이어졌다.

③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2003~2007)

2005년 서울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국방·안보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강화하고, 양국 군사교류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양국이 공식문서에 최초로 군사관계 확대를 명기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에 맞춰 국방대화가 정례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국장급 국방정책실무회의가 정례화돼 2011년까지 총 12회 실시됐다. 양국 각군 수준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2006년 한국 육군 3군사령부와 중국 지난(濟南)군구가 상호방문 정례화에 합의했으며, 해군 2함대와 북해함대, 3함대와 동해함대의 교류가 시작됐다.

가장 큰 성과는 양국간 연합훈련의 실시였다. 2005년과 07년 한·중 해군은 공동으로 하이난다오(海南島)와 상하이 근해에서 각각 수색구조훈련을 진행했다. 이는 양국 군사관계가 전면적 군사교류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④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2008~2012)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양국 관계가 격상된 2008년 이래 양국 군은 해·공군간 직통전화를 개통하고, 연합 수색구조훈련을 계속 실시하는 등 교류를 넘어 초보적 ‘군사협력’ 단계에 진입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시에 한계도 확인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한반도에 안보위기 사태가 벌어지자 중국은 북한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국내 여론이 악화되면서 군 고위급 인사교류가 끊어지는 등 양국 군사관계는 위기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2011년 7월 15일 베이징 ‘8·1청사’(중국 국방부)에서 제8차 한·중 국방장관회담이 열렸다. 회담 직후 양국은 ▶고위급 국방 전략대화를 신설하고 ▶2012년에 단기 군사 교육과정을 상호 개방하며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해치는 어떠한 행위에도 반대하고 ▶재난 상호지원에 대한 양해각서를 조속히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유동원 국방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당시 합의에 대해 “중국이 고위급 국방전략대화를 정기적으로 여는 나라는 미·러 등 7개국에 불과하다”며 “국방전략대화를 추진하기로 한 결정엔 중국 최고지도부의 결심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회담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 박창희 교수 “한·중 군사협력 격상 가능성 커”

한·중 군사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군사교류 단계를 지나 ‘군사협력의 낮은 단계’에 진입했다.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제 군사협력이 높은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의 여부는 한국의 전략적·정치적 결정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중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공모’의 위협에 시달리고, 갈등이 격화되면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대만의 딜레마’로부터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미 군사동맹과 북·중 군사동맹이 안보교류의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왕중춘(王仲春) 중국 국방대 교수는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 조정이 한·중 군사협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중국은 한·미 동맹을 좋아하지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군사협력이 한층 발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박창희 교수는 한·중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동의 국가이익을 갖고 있으며 ▶북한변수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고 ▶군사관계 확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UN 평화유지활동, 해적퇴치 등 다자간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양국 군사협력을 높은 단계로 격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 “서로 다른점 들춰내 사안에 맞게 제도화 할 때”

‘한·중 안보협력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펼쳐진 종합토론 시간엔 참석자들의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김열수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소장은 양국 관계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점을 하나하나 들춰내 사안에 걸맞게 제도화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창희 교수는 “중국이 말하는 동반자 관계는 적을 상정하지 않으며, 현재 상황을 인정한 상태에서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논리”라며 “냉전과 탈냉전이 공존하는 현재 양국은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중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인 북한 문제도 도마위에 올랐다. 위사오화(虞少華)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주임은 “북한이 만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하겠지만 전통적 우호관계까지 단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의 갈등이 악화되는 상황을 막기위한 중국의 고충을 한국민들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한·중 안보협력에 걸림돌이 되는 북한이 중국에겐 핵심이익처럼 보이는 중요이익”이지만 “중국이 향후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선 중견국인 한국과 군사분야를 포함한 다방면의 관계 증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서로 다른 것은 남겨두자는 뜻으로 195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총리가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제창한 중국의 외교방침.

◆이중구동(異中求同)=서로 다른 것 가운데서 공통점을 추구하자는 뜻. 한·중이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씩 해결하려는 자세로 안보협력에 힘쓰자는 의미로 제시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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