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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개콘 ‘네 가지’ 김준현

얼마 전 개그콘서트 ‘네 가지’ 코너를 깔깔대며 볼 때였다. 불현듯 학창시절 수도 없이 들었던 잔소리가 떠올라 흠칫했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던 잔소리. 다들 똑같이 강조하는데, 선생님마다 방법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영어단어를 외워라”고 할 때는 언제고 “듣기를 하라”더니 돌아서면 “오답노트를 훑어라”는 식. 그렇게 자투리 시간에 할 것을 합치면, 그냥 밤을 새는 게 나았다.

 사회는 더 심했다. 단 한 톨도 남김없이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자원이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의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이 인간의 빈 틈을 허락할 리 있을까. 빈 시간은 채워져야 했고 나의 빈 틈, 콤플렉스는 극복돼야만 했다. 극복할 수 없다면? 숨겨야지, 암.

 그런데 여기 “세상 모든 여자들이 싫어하는 조건을 갖췄다”고 당당히 외치는 이상한 네 남자가 나타난 거다. 인기 없고(김기열), 촌스럽고(양상국), 키 작고(허경환), 뚱뚱한(김준현) 남자 넷이 끌어가는 이 코너에서 이들은 콤플렉스를 감추기는커녕 ‘네 가지(싸가지)’ 없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 나 뚱뚱하다. 근데 나 후뚱(후천적 뚱보)이야!”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이는 김준현(32)이다. “얼마 전에 회의실에서 박성광(동료 개그맨)이 ‘내 초코파이 누가 먹었지’하며 구시렁대더라고. 초코파이 누가 먹었냐고? 그냥 나한테 말해. ‘내놔, 내 초코파이 내놔’라고 말하라고!”라고 고함을 치는 ‘뚱남’.

 그는 배우를 꿈꾸다 개그맨이 돼 ‘비상대책위원회’ 코너에서 “고뤠?”로 인기몰이를 시작했고, ‘생활의 발견’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더니 ‘네 가지’에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소위 ‘바람잡이’를 하며 닦아온 그의 내공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상’을 수상했다.)

 인기 없고 촌스럽고 키 작은 남자보다 김준현에게 열광하는 이가 많은 건, ‘뚱뚱함’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의 벽이 어떤 것보다 높다는 얘기다. 여기에 김준현에 대한 호감도가 보태진 거고.

 사실 우리는 빈 틈을 인정하고 까발리고 보여줄 때 그리고 굳이 채우려 들지 않으려 할 때 더 매력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천이 두려웠을 뿐. 그래서 유쾌한 거다. 시간의 여백을, 인간의 빈 틈을 그냥 두고 볼 수 있도록 그가 ‘싸가지’없이 소리질러 주는 일이 말이다.

 이 매력적인 ‘후뚱’이 계속 고함쳐 주기를. “나 살 뺄게”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소심남에 비할 수 없이 귀여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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