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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이어온 대구 고전음악감상실

아버지에 이어 하이마트를 2대째 이어온 김순희씨(왼쪽)가 3대째를 잇는 아들 박수원씨와 함께 음악감상실의 명물인 음악가 석고부조상 앞에 섰다. [사진 하이마트]

“아버지가 원하고 제가 약속한 일을 이만큼이라도 지킨 게 다행스럽습니다.”

 대구의 고전음악 감상실인 ‘하이마트’(Heimat·독일어로 ‘고향’이란 뜻)의 주인 김순희(67)씨는 설레는 목소리였다.

 하이마트가 문을 연 것은 1957년 5월 13일. 6·25 전쟁이 끝난 뒤 어수선한 대구역전 번화가에 지금은 고인이 된 김씨의 아버지 김수억(1914∼69)씨가 고전음악 감상실을 열었다. 고인은 전쟁 때 가재도구를 팽개치고 음반만 한 트럭 싣고 대구로 피란 내려온 음악 애호가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나눌 자리를 만들자”며 이 사업을 시작했다.

 하이마트는 이후 현재까지 55년을 세태 변화에 아랑곳없이 클래식 음악을 들려 주었다. 사업성으로 따지면 동호인의 발길이 뜸해져 쇠퇴기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다.

 무남독녀인 김씨는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께 ‘이제 제가 하이마트를 꾸려갈 수 있다’고 큰소리친 약속을 지키려 지금껏 애써 왔다”며 “돈이야 덜 벌면 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지켜온 공간이 10년 전쯤 먼저 대구에 문을 연 ‘녹향’과 함께 이제는 전국에서 단 둘만 남은 고전음악 감상실이 됐다.

 하이마트는 1970년대까지 대구의 문화 아지트였다. 전성기에는 하루 400여 명이 드나들어 종업원을 9명까지 둘 정도였다. 붐비는 날은 경찰이 가게 앞에서 손님 줄을 세웠고 장발의 청년들은 의자가 모자라 신문지를 깔고 앉아 음악을 들었다. 김춘수·신동집 등 대구 출신 시인들은 이곳에서 모임을 열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전축과 카세트 테이프가 대중화되고 음악 감상이 클래식보다 팝·가요로 흐르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90년대엔 이어폰을 꽂은 채 혼자 디지털 사운드 음악을 듣는 시대가 되면서 고전음악 감상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나마 김씨의 아들 박수원(41)씨가 3대째 하이마트를 이을 든든한 기둥이 된 게 위안이었다. 감상실 소파에서 고전음악을 들으며 엄마젖을 빨던 박씨가 9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리옹 국립고등음악원을 최우수로 졸업한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가 된 것이다.

 2006년 귀국한 박씨는 요즘 어머니와 함께 하이마트에서 클래식 동호회 10여 개 팀과 만나 음악을 해설하고 같이 감상한다. 거기다 최근에는 경신중 등 대구지역 음악특별활동 학생들을 하이마트에서 지도한다. 박씨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LP 레코드판 외에 CD를 트는 것 말고 감상실은 변한 게 없다”며 “외할아버지의 뜻 그대로 함께 음악을 나누는 공간을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들(중1)과 딸(초등6)도 시킨 것도 아닌데 플루트와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얼마 전 손자도 ‘크면 하이마트를 이을 수 있다’고 답했다”며 든든해 했다.

 하이마트는 오는 12일 오후 7시 박씨의 오르간과 피아니스트 이경은, 첼리스트 배기정 등을 초청해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등 실내악 중심으로 설립 55주년 기념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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