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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일본 뉴욕 총영사의 실패한 ‘당근’ 로비

정경민
뉴욕특파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한인 거주지역인 팰리세이즈파크시 제임스 로툰도 시장은 낯선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뉴욕 일본 총영사관이 보낸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 간 우호 증진에 관해 할 얘기가 있으니 비공식적으로 만나자는 제의였다. 이튿날 히로키 시게유키(廣木重之) 뉴욕 총영사는 부총영사를 대동하고 시장실에 나타났다.

 그는 로툰도 시장의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을 했다. 시에 벚꽃 길을 조성해 주고 도서관 장서 기증은 물론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도 추진해 보자고 했다.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선뜻 투자할 뜻도 내비쳤다. 그러곤 마지막에 한마디 걸쳤다. “한데 팰리세이즈파크시 공립도서관 앞에 있는 일본군 종군 위안부 기림비가 영 걸림돌이 돼서….”

 그제야 로툰도 시장은 히로키 총영사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총영사를 돌려보낸 로툰도 시장은 2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위안부 기림비는 전쟁과 인권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에 꼭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반복될 철거 압력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마 10년 전쯤이었다면 일본 총영사의 선물보따리 로비가 먹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한인 유권자의 힘이 세졌다. 2007년 일본 정부의 집요한 방해공작에도 미 연방하원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인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였다. 2010년 팰리세이즈파크시 의회가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승인한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일본군 위안부는 여성인권 이슈다. 20만여 명의 여성을 성노예로 짓밟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모습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진주만을 폭격했던 일제의 망령을 떠올릴지 모른다.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가 만나는 자리에 뉴욕·뉴저지 정치인 7명이 앞다퉈 얼굴을 내민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수십 년 동안 모르쇠로 일관해온 일본 정부와 우익이 요즘 바짝 몸이 단 건 이 때문 아닐까. 일본은 요즘 브라질·인도와 의기투합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을 앞장서 부르짖고 있다. 5개국뿐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문호를 넓혀 일본도 끼겠다는 심산이다. 유엔을 비롯해 각종 국제기구에 선심도 팍팍 쓰고 있다. 한데 딱하다. 선물보따리를 아무리 풀어본들 미국의 작은 도시 시의회 하나 설득하지 못했다. 하물며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 없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게 가당키나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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