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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New] 봉은사

오는 28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신한 날이다. 세계의 모든 불자가 함께 기뻐하는 이날, 봉은사(奉恩寺)에도 오색 연등이 걸리며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불법을 세상과 나눈다.

 봉은사는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조계종 사찰이다. 신라시대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년)에 창건한 견성사(見性寺)를 1498년(연산군 4년) 중창해 선릉의 원찰(願刹, 승하한 임금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으면서 봉은사란 이름을 얻었다. 그 후 1562년(명종 17년)에 삼성동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견성사 위치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29년 발간된 『조선사찰삼십일본산사진첩(朝鮮寺刹三十一本山寫眞帖)』에 실린 봉은사 사진(왼쪽)과 현재 모습. [사진 중앙포토, 봉은사 제공]

 조선시대 한양 주변 절 가운데 ‘봉(奉)’자가 들어간 절은 왕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예컨대 봉은사는 성종을 모신 선릉(宣陵) 원찰이고, 봉국사(奉國寺)는 정릉(貞陵), 봉선사(奉先寺)는 광릉(廣陵) 원찰이다.

 1960~70년대 강남이 개발되기 전만 해도 봉은사는 강북 ‘서울사람’들이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찾아가던 명승지였다. 강남에서는 언북·언남초등학교 학생들이 원족(遠足, 지금의 소풍)을 가던 단골 장소였다. 그때만 해도 소풍은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가는 곳이 일정했다.

 봄꽃이 지천으로 핀 봉은사에 들어서면 맨 처음 진여문(眞如門)을 지나야 한다. 다른 절에서는 일주문이라고 하지만 봉은사에선 진여문이라 부른다. ‘진여(眞如)’란 사물 본질을 뜻한다. 그 문에 들어서는 일은 ‘절대불변의 진리 속으로 들어선다’는 의미다. 자비로운 부처님 가르침이 문 너머 봉은사 안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여문을 지키는 사천왕은 사나운 모습이지만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어쩐지 무섭다기보다는 정이 가는 표정이다. 불법이 모셔진 도량 동서남북을 지키기 위해 세워둔 사천왕 네 명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봉은사 사천왕 원형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헤라클레스라니 재미있다.

 서동철 문화재전문기자는 얼마 전 출간한 『오래된 지금』에서 봉은사 진여문에 있는 사천왕 중 ‘서방광목천(西方廣目天)’ 원형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라고 설명한다. 서방광목천이 발로 밟고 있는 사자는 헤라클레스가 네메아 계곡에서 죽인 뒤 그 가죽을 쓰고 다녔다는 ‘네메아의 사자’라고 한다.

 알렉산더대왕이 간다라 지역을 정복하면서 그리스문화와 불교문화가 융합하는 과정에서 헤라클레스가 부처 호위무사로 편입됐고, 이후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들어와 조선시대 봉은사 사천왕에 그 흔적을 남겼다.

 진여문을 지나 봉은사 경내로 들어서면 마천루에 둘러싸인 널찍한 사찰이 보인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고즈넉한 장소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봉은사 면적은 6만6000㎡가 넘는데 이 땅과 관련해서 많은 사연이 있었다.

 먼저 개화기 쇄국정책 화신이었던 흥선대원군이 봉은사와 큰 인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비석이 남아 있다. 흥선대원군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은혜를 기리며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세운 비석)’다.

 비문 내용은 이렇다. ‘왕실에서 받은 절(봉은사) 소유 땅 일부가 그 주변 농토와 섞여 지주들과 여러 해에 걸쳐 소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흥선대원위(군)께서 문제된 토지를 절(봉은사)에 돌려주게 했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그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주지승이 고종 7년 경오년(1870년)에 이 불망비를 세운다’.

 봉은사는 선릉 원찰이었기 때문에 왕실로부터 받은 방대한 사하전(寺下田)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대원군 비문에서처럼 조선시대에도 땅과 관련한 분쟁이 생길 만큼 넓었다. 지금의 코엑스, 아셈타워, 인터콘티넨탈 호텔, 강남 공항터미널, 한국전력 등 삼성동 요지가 모두 봉은사 땅이었다. 1970년대 정부는 봉은사 앞 땅 38만7000여 ㎡를 팔라고 요청한다. 불교계는 상당한 내홍을 겪은 끝에 결국 땅을 판다. 대신 당시 서울시내 요지였던 장충동 일대 땅과 남산 공무원교육원 건물 등을 사들인다.

 한 달 뒤 정부는 대대적인 강남 개발계획을 발표한다. 불교계로서는 통탄할 일이었다. 그때 만약 봉은사 소유 땅을 팔지 않았다면 지금의 강남은 판도가 달라졌을 수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역사의 아이러니다.

 12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선종 으뜸사찰 봉은사는 연회국사를 비롯해 조선불교 중흥조(中興祖) 보우·서산·사명대사, 남호 영기율사, 영암큰스님 같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명찰이다. 특히 봉은사 승과고시는 당대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는 등용문이었다. 나중에 봉은사 주지까지 지낸 휴정(休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인 유정(惟政) 사명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와중에 뛰어난 외교력과 전략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인재였다.

 창연한 역사와 함께했던 봉은사는 그 역사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청동누은향로(보물 321호), 선불당(서울유형문화재 64호), 장흥사명동종(〃 76호), 판전 현판(〃 83호), 대방광불화엄경 경판(〃 84호) 등 주요 문화재 21점을 보유하고 있다.

 한때 강남을 대표하는 ‘부자사찰’이라는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봉은사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불교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25만에 이르는 신도가 귀의한 불법(佛法) 도량 봉은사는 이제 불자는 물론 서울시민의 쉼터로 강남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한국 불교의 면면한 역사와 법통을 이어온 봉은사 내력을 더듬어 봤다.

최병식 강남문화원 부원장 (문학박사·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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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