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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위안부 할머니 한 맺힌 호소 … 세상을 향해 힘껏 외쳤을 뿐

강민지(18·한영외고3·송파구 풍납동)양은 지난달 27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시 시민상’ 청소년 부문 대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었다. 강양은 같은 학교 허건성 교사의 추천으로 서울시 시민상 후보 공모에 신청했고, 접수자 170여 명 중 최고상을 받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돕기에 앞장선 게 수상 이유다.

전민희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강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게 된 건 중3 때 TV에서 본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다큐멘터리 내용이 충격적이었어요. 제 또래에 일본군에 끌려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고국에 돌아온 할머니들 얘기였죠.”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어떻게 우리를 외면할 수 있냐”며 아픔을 토해냈다. 강양은 그들의 한(恨)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그 후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속 할머니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양의 바람은 한영외고에 입학하면서 이뤄졌다. 고1 때인 2010년 4월 교내 사진동아리 ‘모티브(MOTIV)’의 회원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처음 방문했다. ‘한·일 평화콘서트 및 원폭피해자 사진전시회’ 진행을 돕기 위해서였다. 행사 사진을 찍으며 전쟁의 잔혹성을 알게 됐다. 강양은 이날 함께 행사장을 찾은 강동구청소년봉사단 ‘세빛또래’에 가입했다. ‘세상의 빛이 되는 또래모임’이라는 뜻의 세빛또래는 정기적으로 나눔의 집을 찾아가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눔의 집에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여덟 분이 계셨다. 강양은 당시 이옥선(85) 할머니의 방에 들어갔던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눔의 집 관계자로부터 “일본군에게서 당한 충격으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할머니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할머니의 방문 앞에서 한참 고민했다. ‘따뜻하게 대해드려도 냉랭하게 반응하시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 할머니는 친손녀처럼 반겨줬다. 덥석 잡은 할머니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강양은 학교급식 메뉴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별로 재미없는 얘기인데도 할머니 얼굴에선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어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죠.” 강양은 이후 매달 한 번은 반드시 나눔의 집을 찾았다. 시험기간이나 봉사단이 활동을 쉴 땐 엄마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다. “안 그래도 외로우신 분들인데 한동안 가지 않으면 말벗이 돼드릴 사람이 없잖아요.”

 한 번, 두 번 방문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억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문제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세빛또래 부회장을 맡은 강양이 그해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과 함께하는 나라사랑 캠페인’ 행사를 기획한 이유다. 같은 학교 친구 6명이 운영위원으로 동참했다. 행사 두 달 전부터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짰다. ‘누가 일본군 위안부를 책임져야 하는가’란 주제로 일본·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모의재판을 열었다. 나눔의 집 할머니 세 분이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을 증언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들로부터 ‘시급히 해결돼야 할 사항’이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행사를 기획하면서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세계로, 세계로’ 프로그램이었다. 한영외고 학생 15명이 무대에 올라가 ‘할머니들에게 드리는 약속’ ‘한국정부에 보내는 호소’ ‘일본정부에 보내는 외침’을 한국어·영어·일본어·스페인어·중국어로 낭독했다. 혹시라도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이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홍보한 덕분인지 학생·학부모 1000여 명이 행사에 참가했어요. 자리가 모자라 3시간 동안 서서 행사를 지켜본 사람도 많았죠.” 이후 세빛또래 카페에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일본이 사죄하도록 우리정부도 노력해야 한다”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강양은 나눔의 집 방문 외에도 ‘숲과 나무 지역아동센터’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 입양인을 위한 비영리단체 ‘뿌리의 집’에서 출판·기획하는 도서를 번역하고, ‘열린사회 강동·송파시민회’가 주관하는 독거노인·저소득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집수리 봉사에도 참여했다.

 봉사는 강양의 진로를 바꿔놨다. 중학생 때까지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해 여행 프로그램 PD가 되고 싶었다”던 그는 이제 “소외된 이웃의 얘기를 담아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고, 불우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이 종종 ‘학교생활 하면서 그렇게 많은 봉사활동을 어떻게 했냐’고 물어봐요. 그때 말하죠. ‘봉사는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제가 사진으로 봉사활동과 인연을 맺었듯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봉사부터 도전한다면 재미와 보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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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