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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 때부터 운하 시도했었다

한강과 서해를 뱃길로 연결하는 아라뱃길 개척 노력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왔다. 첫 시도는 고려 23대 왕인 고종(高宗·1192~1259년)이 재위하던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천지역에는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가 있었다.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를 거쳐 서울 마포로 들어가는 항로였다.

하지만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손돌목(강화군 불은면 광성리 해안)은 뱃길이 매우 험했다. 당시 무신정권을 이끌던 최이는 안정적인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굴포운하를 시도했다. 인천시 서구 해안에서 굴포천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오는 뱃길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두꺼운 암석층을 뚫는 게 불가능해 실패로 끝났다.

운하 건설 시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속됐다. 태조 이성계 때(1395년)와 태종 12년(1412년)에도 태안반도의 안흥량(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있는 해협)을 뚫어 운하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타당성 논란만 거듭된 채 없었던 일로 결론이 났다.

이어 조선 중기 중종(1530년) 때 김안로의 주장으로 또다시 운하 건설을 추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현대에 들어선 1966년에도 서울시 가양동에서 인천시 원창동 율도까지 총연장 21㎞의 운하 건설이 추진됐지만, 경인지역의 급격한 도시화와 지역 개발로 중단됐다.

그러던 중 1987년 김포·부천·인천 계양구 일대에 대홍수가 일어났다. 폭이 좁은 굴포천이 범람하면서 사망 16명, 이재민 5427명, 재산피해 420억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났다.

이후 운하 건설 논의가 재개됐지만 사업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환경 파괴와 경제성 부족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면서 관련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12월 아라뱃길 건설계획이 최종 확정됐고, 2년4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오는 5월 말 개통한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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