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방서만 봐도 어떤 업체 몫인지 알아 … 그들만의 리그

“원자력발전소 납품 시장은 ‘황금어장’으로 불린다. 들어가긴 무척 어렵지만 일단 진입하면 고수익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용 자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장 A씨의 말이다. 화력발전소 납품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운영하는 원전에도 유사한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발전소 부품은 적격 업체로 등록돼야 납품이 가능하다. 그런데 화력발전소에 비해 안전등급이 높은 원전은 심사과정이 훨씬 까다롭다. A사장은 “그렇다 보니 원전 납품 등록을 처리해주는 업체도 있고,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 한수원 퇴직자들을 영입하는 업체도 많다”고 전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진입장벽에도 굳이 원전 납품을 뚫으려는 이유는 뭘까. 바로 한 번 납품만 되면 ‘독식’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A사장은 “특정 품목을 놓고 몇몇 업체만 입찰에 참가하다 보니 같은 제품이라도 화력발전소에 팔 때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의 수사를 통해 각종 납품 관련 비리가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것도 이런 특성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전 납품 시장은 한수원이란 독점적 수요자와 제한된 공급자가 존재하는 특수한 형태다. 경쟁을 제한하는 명분은 전문성과 안전성이다.

 원전에 들어가는 부품은 약 100만 개, 이들 부품 구매에 들어가는 돈만 지난해 기준으로 1조3000억원이었다. 이를 800여 개 등록업체가 나눠 갖는다. 원전 숫자가 늘고 기존 원전이 점차 노후화되면서 시장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신규 업체는 별로 없다. 특히 금액이 큰 납품 건일수록 그렇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10억원 이상 계약에 신규 업체가 참여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면서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라고 말했다.

 납품만이 아니다. 정비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원전 계측을 할 자격을 갖춘 업체는 5~6곳뿐이다. 고리 사고 은폐 사건 이후 원전 당국은 “문제 협력업체는 바로 퇴출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이달 종합대책에서는 슬쩍 ‘3진 아웃제’로 바꿨다. 퇴출 업체를 대체할 곳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착과 부패가 싹 틀 환경은 갖춰졌지만 견제와 감시는 태부족이다. 특히 본사의 간여 없이 지역 원전에서 자체 구매할 수 있는 10억원 이하 부품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많다. 10억원 이하 부품 구입에만 2300억원이 든다. 부품 구입 권한이 발전소 현장 엔지니어에게 집중된 것도 문제다. 필요한 제품의 규격을 정하고, 들어온 제품의 성능을 확인하고, 국산화를 지원하는 일도 이들이 주도한다. 그러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 특정 업체를 밀어 줄 수 있는 구조란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방서만 나와도 ‘이건 어느 업체 몫’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자연히 납품업체에 이들 현장 간부는 ‘수퍼 갑(甲)’이다. 지난해 이후 납품 비리에 연루돼 검찰에 구속된 한수원 직원들도 대부분 이런 직군 종사자거나 출신이었다. 반면 이들을 견제해야 할 계약부서 등이 하는 일은 사실상 행정 처리 수준에 그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자력은 전문성이 강조되는 분야여서 모든 업무가 엔지니어 출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서 “한수원 내부에선 사무직들도 이들에게 밀려 기를 못 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런 원전의 특성상 각종 부조리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굳어져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서울대 서균렬(원자핵공학) 교수는 “외부에 울타리를 친 상태에서 경쟁이 없는 상태로 오랜 기간 운영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면서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상납 구조만 봐도 비리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방증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고리원전 직원 수사 과정에서 찾아낸 차명계좌만 69개에 달했다. 협력업체 대표의 친인척이나 직원 가족들은 물론 건물 세입자, 교회 사모임 총무 계좌까지 활용됐다.

 지경부 관계자는 “최대한 시장을 열고 경쟁 구도를 만들어 민간 납품업체들끼리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해법”이라며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