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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여론 女論] 명사의 부엌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부엌은 대문 하나 들어서면서 오른편 쪽으로 있었다. 위치도 좋거니와 몹시도 안이 깨끗하였다.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은 밥상이라든지 또한 부엌 벽이 말쑥한 것이 퍽도 씨들의 생활 여하를 알 수가 있었다… 찬장 안이나 어떤가 하여 기웃이 들여다보았으나 역시 깨끗하게 씻어 얹어놓은 사기그릇이라든지 놋그릇이 그리 많지는 않아도 꼭꼭 접혀 있는 것이 가장 깨끗함을 느끼게 하였다.”(‘명사가정 부엌 참관기-생각과는 판이하게 검박(儉朴)한 무용가 최승희씨의 주방’, ‘신여성’, 1931.10)

 잡지 ‘신여성’에서는 1931년 10월과 11월에 “명사 여러분의 부엌을 참관하고 그것을 그대로 독자에게 보고해 드리며 다소의 참고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이라며 ‘명사가정 부엌 참관기’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여기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 서춘(徐春), 여기자 최의순(崔義順),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사회운동가 윤형식(尹亨植), 변호사 이인(李仁), 목사 양주삼(梁柱三) 등의 가정을 방문해 이들의 부엌의 위치나 구성 및 청결상태, 식생활의 방식 및 규모 등을 탐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위의 인용문은 그중에서 무용가인 최승희의 소박하고 청결한 부엌의 모습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남편 안막(安漠) 덕분에 최승희는 요리 걱정은 별로 없으며, 가장 즐겨 먹는 반찬은 깍두기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목사 양주삼의 아내는 “우리는 아침을 제일 중요하게 칩니다. 그래서 아침은 순(純)서양식으로 처음에 일어나면서 사과나 감으로 각각 즐기는 대로 하나씩 먹고 그 다음은 죽(보리죽, 밀죽, 잣죽) 등으로 아침마다 변경하여 먹고 그 위에 우유 한 곱부씩 먹고 그 다음 빵과 계란으로 이렇게 먹습니다. 그 다음 마지막에 차를 마시고요…”라며 자신들이 서양식 식사를 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가정은 부엌도 ‘아메리카식’으로 꾸며 놓았다.

 이런 식의 기사들이 ‘소비지향적’으로 ‘진화’하여 오늘날의 수많은 ‘집 탐방’ TV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주부 대상 프로그램들에서나 연예프로그램 등에서 이러한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다. 명사들의 집에 찾아가 그들의 집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훑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입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운관에 비친 그들의 집과 생활 모습은 하나같이 ‘웰빙’이고 ‘럭셔리’하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일차적으로는 ‘동경’과 ‘선망’의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결국 그들처럼 ‘잘 먹고 잘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비루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언제까지 우리는 남의 집 침실과 부엌을 들여다보도록 강요당해야 하는 걸까. 실생활인지 연출인지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삶을.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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