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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녹색당, ‘전두환 마법’에 사라지다

권석천
논설위원
영등포역에서 영등포로터리 방향으로 350m 직진. 인터넷 홈페이지의 ‘찾아오시는 길’만 믿고 나선 길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초록색 글씨가 적힌 마분지 세 장이 문에 붙어 있다. 녹·색·당. 훤한 대낮인데도 30평 남짓한 당사 안은 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형광등 열 개 중 두 개만 켜져 있다. 이 작은 정당의 강령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2030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쇄하고 ▶FTA 폐기로 식량 자주권을 확보하며 ▶동물의 생명권을 헌법적 권리로 삼자고 주장한다. ‘칼퇴근법’ 추진과 군 대체복무제 도입도 공약으로 내놓았다.

 공식적 의미에서 녹색당은 4·11 총선 다음날 17개 군소 정당과 함께 사라졌다. 비례대표 득표율 0.48%(10만3811표). ‘총선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는 등록을 취소한다’는 정당법 44조에 걸려든 것이다. 당명도 사용하지 못한다. 정당법 41조는 등록 취소된 정당의 명칭을 다음 총선 때까지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승수(44) 사무처장은 “이번 선거에서 거대 정당에만 유리하게 돼 있는 정치 제도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고 했다.

 “재창당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당명을 ‘녹색당 더하기(+)’로 바꿀 계획이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녹색당!’도 된다는 얘기가 있어서요. 약칭을 녹색당으로….”

 당명은 그 당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기니, 느낌표니 하는 수식어를 덧붙이게 하는 건 소수 정당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토록 섬세한 법을 만든 이가 대체 누구일까. 사무실로 돌아와 국회 법률정보지식 시스템과 회의록, 옛날 신문기사 등을 뒤졌다. 하루를 매달린 후에야 윤곽이 잡혔다.

 해당 조항이 정당법에 들어온 건 1980년 11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출범한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작품이었다. 뒤이어 선관위는 민주당·민주공화당·민주통일당·국민당·자유당 등을 당명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발표한다. 이들 조항은 87년 6월의 민주화 바람 속에 한 차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당시 여야 지도부도 군소 정당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89년 정당법 개정에서 당명 재사용 금지 부분만 삭제된다. 2000년 총선 때 1.18% 득표에 그쳐 등록이 취소된 민주노동당이 2% 규정에 대해 행정소송과 함께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하지만 기각되고 만다.

 ‘전두환 정신’이 새롭게 재조명을 받은 걸까. 2002년 2월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군소 정당 규제를 5공 수준으로 강화한다. 당명 재사용 금지 규정을 부활시킨 것이다. 회의록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정치 개혁을 위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보라. 32년에 걸친, 정치인들의 가열한 노력 덕택에 우리 사회는 ‘급진 세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수십만의 유권자가 그들에게 표를 던져도 대한민국 정치가 여전히 ‘건전한’ 이유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위협한다면 헌법재판 절차를 거쳐 해산하면 된다. 국고보조금 지원을 않는 건 몰라도 득표율이 적다는 이유로 존재 기반까지 허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유권자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닐까. 정당을 살리고 죽이는 마지노선은 왜 ‘2%’여야만 할까.

 새로운 생각은 불온해 보인다. 그리고 모든 정파와 정당의 출발점은 소수다. 한국 정치가 그 밥에 그 나물인 데는 다수의 생각과 다른 소수 의견들을 문전박대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세대·계층·집단의 생각이 자유롭게 경쟁하지 못하는 한 정치 생태계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새 정치를 하겠다는 새누리당도,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는 민주통합당도, 약칭 ‘진보당’인 진보신당이 등록 취소되자 당명을 진보당으로 바꾸겠다는 통합진보당도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소수 정당이 올라설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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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