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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분쇄기서 자동차까지, 프랑스 감성 디자인으로 승부

부드러운 승차감의 대명사 시트로앵 2CV. 1948년 출시돼 90년 단종될 때까지 같은 디자인으로 장수했다. 1000만원대로 가격이 저렴해 유럽인의 대중차로 사랑을 받았다. 개발 컨셉트는 ‘비포장길에서도 광주리 속 계란이 떨어져 깨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이다. 작은 돌을 촘촘히 박아 넣은 유럽의 돌길, 이른바 ‘벨지움 로드’를 달릴 때 그 진동을 거의 흡수할 정도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2008년까지 100년 넘게 미국이 부동의 1위였다. 2009년 떠오르는 중국에 최대 시장(1350만 대)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다. 1990년대 미국은 연간 신차 규모가 1700만 대를 넘어서 2000만 대 고지를 곧 밟을 듯한 기세였다.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신차 개발 때 당연히 미 소비자 취향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수출로 먹고사는 일본ㆍ한국 업체들은 이것이 신차 개발의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널찍한 실내공간에서 큰 트렁크에 이르기까지 엇비슷한 차를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도요타 캠리와 현대 쏘나타는 미국을 겨냥한 차다.

김태진 기자의 Car Talk 브랜드 이야기 ⑥ 푸조-시트로앵

1 푸조 디젤 세단의 진수 508GT. 204마력을 내는 2.2L 디젤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그런데도 연비가 15.5㎞/L에 달한다. 큰 차를 선호하는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둬 뒷좌석과 트렁크를 크게 했다. 골프백 4개가 들어간다. 5610만원.2 연간 500만 개 이상 팔리는 푸조의 후추 분쇄기.
그런데 프랑스에 독불장군이 있었다. 미국 위주로 가는 대신 독자 스타일을 고집했다. 유럽 시장에 중심을 두고 남미 같은 신흥시장에 주력한 푸조-시트로앵(Peugeot-Citroen)이었다. 이 회사는 91년 20여년 만에 미국에서 철수하면서 특유의 디자인과 감칠맛 나는 신차를 선보였다. 결국 독일 폴크스바겐을 뒤쫓는 유럽 제2의 자동차 메이커로 우뚝 섰다.

사자 모양의 로고로 유명한 푸조에 대해 몇 가지 덜 알려진 것이 있다. 첫째는 독일 벤츠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오래된 완성차 업체라는 점이다. 다음은 연간 300만 대 이상 나가는 자동차보다 더 많이 파는 제품이 있다는 사실이다. 식탁용 후추 그라인더(분쇄기)가 그것이다. 아울러 이 회사는 현존하는 완성차 업체 가운데 단일 로고를 가장 오래 쓴 회사다.

푸조는 1896년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1912년 세계 최초로 실린더 한 개당 4개의 밸브와 캠 샤프트를 갖춘 현대식 엔진을 내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용차ㆍ앰뷸런스ㆍ모터사이클 등을 만들어 기술력을 쌓았다. 31년에는 세계 처음 앞쪽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단 201을 선보였다. 이어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륜차) 사업을 분리하면서 자동차 이름 가운데 ‘0’이란 숫자를 넣기 시작했다. 0 앞의 숫자는 차의 크기(가령 2는 소형차)를, 0 뒤의 숫자는 몇 세대인지를 뜻한다. 308은 준중형 3시리즈 8세대 모델, 607는 대형 6시리즈의 7세대 모델이란 뜻이다. 독일 포르셰도 모델명을 세 자리 숫자로 짓는 회사다. 처음에는 가운데 숫자로 0을 쓰려 했다가 푸조에 선수를 빼앗겨 그러지 못했다. 푸조는 2000년대 이후 획기적인 신차를 내놓으면서 가운데 0을 두 개 겹쳐서 쓰기 시작했다. 소형 CUV 1007과 SUV 3008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줄곧 대중차만 만들었다. 비교적 저렴한 대중차라고 성능이나 품질까지 확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적어도 푸조는 소형 해치백과 컨버터블(지붕이 열리는 차)의 명가로 불린다. 34년에는 세계 첫 하드톱 컨버터블 401 이클립스를 내놨다. 70년대는 비약적으로 사세를 키운 시기다. 76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프랑스 3위 업체 시트로앵 지분 90%를 사들인 데 이어 78년 크라이슬러 유럽 부문까지 인수해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한다.

푸조-시트로앵의 디자인은 독일차와 확연히 다르다. 감성적인 것이 가장 그렇다. 벤츠ㆍBMW의 경우 균형 잡힌 몸매와 선·면이 확실히 구분돼 긴장감을 주는 데 비해 푸조는 곡선과 곡면을 충분히 활용한다. 세련을 넘어서 파격적이고 괴기(?)스러울 때도 있다. 성능을 봐도 자로 잰 듯한 핸들링이나 가속력에 기대기보다 적당히 잘 달리는 느낌을 주며 프랑스의 고즈넉한 풍치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이틀이 멀다 하고 세차하고 광 내지 않아도 되는 차다. 뾰쪽 나온 앞 오버행(범퍼와 앞바퀴 거리)은 ‘프랑스 특유의 콧대’라는 유머도 나왔다. 너무 섹시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연인보다 푸근한 애 엄마 같은 차라고 할까.

기자가 10여 년 전 자동차 취재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BMWㆍ아우디처럼 서스펜션이 딱딱한 차를 좋아했다. 날렵한 핸들링이 맘에 들어서다. 하지만 승차감에서 편한 차에 점점 끌렸다. 주행 충격을 완화해주는 서스펜션이 적당히 물러 승차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차체 무게가 덜 나가 경쾌한 발놀림이 가능한 차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BMW와 정반대로 서스펜션이 부드럽기로 소문난 차가 시트로앵이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시트로앵은 34년 세계 첫 양산형 전륜구동 ‘트락숑 아방’을 내놓으며 기술력을 뽐냈다. 48년에는 2CV라는 전설적 명차를 내놨다. 보닛 위에 보조 타이어를 동여맨 독특한 디자인에 가격도 싼 편이었다. 실용성이 뛰어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대중차로 사랑을 받았다. 90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동일한 디자인으로 장수한 차로 유명하다. 기자가 2006년 그리스 출장 때 길거리에 2CV가 많이 돌아다니는 걸 봤다. 좁은 골목길에 딱 어울리는 실용적인 디자인이었다. 전영선 자동차문화연구소장은 “2CV는 부드러운 승차감에서 최고였다”고 평했다. “시골 아낙을 뒷좌석에 태우고 비포장길을 달려 장터에 갈 때 광주리에 가득 넣은 계란이 흔들려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 만들자는 것이 개발 컨셉트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차의 서스펜션이 무른 이유는 이렇다. 유럽의 오래된 길은 아스팔트로 된 것보다 작은 돌을 촘촘히 박아 넣은 돌길이 많다. 전문용어로 ‘벨지움 로드(Belgium Road)’라고 한다. 자동차 탄생 전 마차가 대중교통 수단이었을 때 말이 남긴 수북한 대변을 손쉽게 물질해 닦아내려고 만든 도로다.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길이다. 이런 돌길을 달리려다 보니 프랑스 차는 서스펜션 개발에 힘을 많이 쏟았다. 바퀴가 툭툭 튀지 않게 부드러우면서도 핸들링까지 만족스럽다.

시트로앵은 이달 중순 한국 시장에 다시 상륙했다. 10년 만이다. 1994년 한국에 들어왔다가 2002년 철수했다.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가 내놓은 신차는 디자인이 빼어난 소형 해치백 DS3다. 판매가를 2000만원대로 정해 개성적인 차를 찾는 30, 40대를 겨냥했다. 1.4L 디젤모델(2890만원)은 연비 25.7㎞/L로 도요타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 다음으로 좋다. 요즘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은 독일제가 절대 강세다.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이다. 프랑스풍 디자인과 편안한 서스펜션으로 단장한 푸조-시트로앵이 독일차에 길들여진 한국 드라이버의 입맛을 얼마나 바꿀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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