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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흘러가네, 하염없이 망연하게

‘우주 체험을 한 뒤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
우주비행사 슈와이카트의 증언이다. 안현미 시인은 이 한마디를 도입으로 해서 ‘합체’라는 시를 썼다. 어떤 남녀가 만나 둘만의 ‘우주’라는 공간을 발견한다. 그 우주에는 그들만의 별이 있어 착륙한다. 그 별은 ‘하나는 많고 둘은 부족한’ 사이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합체하듯이 꼭 껴안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종결된다. ‘사랑을 체험한 뒤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

詩人의 음악 읽기 그리그 피아노 모음집 ‘서정 소품’


지난 회 핀란드 음악가 시벨리우스를 이야기했기에 자연스레 북구의 다른 예술가들, 그중에서도 노르웨이의 그리그(위 사진)를 떠올린다. ‘송 오브 노르웨이’ 같은 영화에서나 본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어우러지는 그리그 음악을 말하고 싶었으나 불쑥 목에 걸린 가시처럼 브레이빅이 먼저 떠오른다. 자국의 다문화 정책을 참을 수 없다며 10대 청소년 69명을 쏘아 죽인 악한 말이다. 버지니아텍의 조승희가 한국인을 대표하지 않듯이 그 흉포한 극우파 테러범이 노르웨이의 얼굴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브레이빅의 범행 동기는 자기 조국을 너무나 사랑해서란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사랑은 냉소에 의해 길러지고 배반에 의해 완성된다는 은희경의 말이 기억난다. 사랑의 감정에 푹 함몰되지 말아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합체’라는 시와 그리그 음악에 어떤 연결고리는 없다. 흔히 애절하고 영원한 사랑의 노래로 알려진 ‘솔베이그의 노래’도 원작 희곡 ‘페르귄트’의 내용을 알면 생뚱맞은 기분이 든다. 솔베이그의 남편 페르는 마초, 방탕아에 무모한 사업가로서 일생 별짓을 다하다가 다 죽게 됐을 때 불쌍한 아내를 찾아간다. 그런 자나, 그런 자를 기다리다 재가 돼 스러지는 아내나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화딱지 나는 일일 뿐이다. 아, 그런데도 왜 한 사람이 서기에는 조금 넓고 두 사람이 함께 서기에는 조금 좁아 껴안을 수밖에 없다는 시 ‘합체’에서의 별을 그리게 되는 걸까. 절대적인, 그래서 가공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상태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리라. 존재하지 않으나 모든 이가 꿈꾸는 어떤 곳.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연주 음반.
그리그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관현악 모음곡 ‘페르귄트’다. 여기에 방송 시그널용으로 많이 쓰이는 피아노 협주곡 A단조와 몇몇 가곡을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은 66곡의 피아노 소품을 모아 10권으로 정리한 3시간 분량의 ‘서정 소품집’이다. 제목 그대로 마냥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평온하다. 가보지 못한 사람이 이념형으로 상상하는 북유럽의 멋진 피오르 해안선이며 오로라가 빛나는 밤하늘을 떠오르게 한다. 예전에는 그런 풍경사진 달력이 많았다. 알프스 산정에 양떼가 뛰놀고 전통 복장의 양치기 소녀는 ‘요들레이!’ 노래를 부르고. 그렇다고 ‘서정 소품집’이 통속한 살롱풍 라운지음악이라는 뜻은 아니다. 노르웨이 민속음악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요를 기반으로 한 풍요로운 감수성이 빛난다고 높이 평가된다. 이 곡에 대한 내 관심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하염없이 긴 곡이라는 점에 있다.

세상에는 귀를 ‘부릅뜨고’ 긴장한 상태에서 들어야 하는 명곡도 많지만 그 반대로 흘러가는 물살을 쳐다보듯이 하염없고 망연한 상태에서 소리를 놓아주어야 하는 음악도 있다. 기나긴 피아노 곡들이 바로 그렇다. 멘델스존의 ‘무언가’가 그 전형이다.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노래가 피아노를 통해 몇 시간 계속된다.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평온하게 듣기는 어렵지만 그에게도 그런 곡들이 있다. ‘순례의 해’ 시리즈가 그것인데 ‘제 1년 스위스’ ‘제 2년 이탈리아’ ‘제 3년 저녁의 종! 수호천사에의 기도’이다. 사실 이런 하염없음은 바로크 시기로 가면 많다. 스카를라티나 코렐리, 쿠프랭의 건반음악은 죄다 비슷비슷하면서 한도 끝도 없다. 다만 그리그에서 리스트까지 낭만 영역의 긴 피아노 곡들에서는 감정의 체취가 흠뻑 다가온다는 차이가 있다.

‘결사적’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결사적인 사랑, 뭐 이런 것. 하지만 군부독재 타도건 그녀와의 사랑이건 나의 결사는 취향의 영역이었을 뿐 실제로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더 이상 결사는 염치없는 허세가 되고만 대신 ‘하염없고 망연한’ 시간의 소비를 사랑한다. ‘not to do’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래서 더욱 그리그의 서정 소품을 사랑한다. ‘사랑을 체험한 뒤엔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고 시인은 썼다. 그 뜨거운 체험은 나도 알고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 이후, 합체 이후의 시간이다. 사랑이건 정치건 세상의 모든 뻑뻑한 이여. 하염없고 긴 피아노 곡 좀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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