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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owiczia typica”(<막시모윅지아 티피카·최대한의 맛>자존심으로 빚은 술,오미자 와인

3월 26~27일 서울에서 열린 2012 핵안보정상회의 특별만찬에 선보인 오미자 와인이 화제다. 53개국 정상과 국제기구 4곳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중요 행사인 만큼 총 다섯 차례의 오찬과 만찬을 위해 국내 정상급 호텔 소믈리에, 식음료 자문위원 등으로 구성된 준비기획단이 수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만찬주를 선정했다. 이탈리아 ‘리제르바 두칼레 오로’, 스페인 ‘TG 달리 에디션 레세르바’, 칠레 ‘마르케스 데 카사 콘차 메를로’ 등 세계 10개국의 유명 와인들 사이에 우리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와인 ‘오미로제(OmyRose)’가 공식 리셉션주로 당당히 어깨를 겨뤘다. 몸에 좋은 약재나 차의 재료 정도로 여겨지던 오미자가 어떻게 세계인의 입맛을 겨냥한 고급 와인으로 변신한 것일까.

핵정상회의 공식 만찬주 ‘오미로제’ 만든 이종기 한경대 교수

‘오미로제’는 과즙 첨가 없이 오미자만을 발효시켜 유럽의 정통 와인 양조기술로 만든 술이다. 경북 문경 산간 고랭지역에서 재배한 유기농 오미자를 원료로 한경대 생명공학부 이종기(58) 교수가 오랜 실험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1차 발효 후 오크통에서 6~18개월 동안 숙성시킨 스틸 와인과 12개월 이상의 병 발효를 거친 스파클링 와인 두 종류다.

1 국내 최초로 오미자 와인을 개발한 이종기 한경대 교수.사진 준초이 2 경북 문경에 있는 오미자 농원 풍경.
특히 섬세하고 힘 있는 버블이 코를 자극하고 달콤한 과일향 뒤 특유의 쌉쌀함이 목을 넘기며 갈증을 사라지게 하는 스파클링 와인은 ‘돈페리뇽’으로 유명한 프랑스 샹파뉴 지방 에페르네 근교 오빌레 수도원의 제조방식을 적용해 와인 애호가와 미식전문가, 유명 셰프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만찬을 진행한 신라호텔 이현철 과장은 “전체적으로 음식과 잘 조화된다는 평이었고, 토종 오미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상들이 호기심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첫 출시 이후 서울의 와인숍 한 군데에서만 판매되던 것이 핵안보회의 이후 신세계, 롯데, 현대 등 서울과 지방의 백화점으로 확대됐다. 이 교수는 “뱅가, 두가헌, 가스트로통 등 국내 와인 레스토랑은 물론 특급호텔과 기업, 은행, 그리고 독일과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에서도 선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술과 약도 구분 못하나”
‘오미로제’의 탄생 배경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다국적 주류회사 OB씨그램에 다니던 이종기 교수는 1990년 연수차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헤리옷 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과 함께한 어느 날의 파티, 주임교수의 제안으로 각국 대표 명주를 시음하는 행사가 열렸다. 모든 술이 호평을 받는 가운데 딱 한 가지 악평을 받은 술이 있었으니, 바로 이 교수가 가져간 인삼주. “한국인들은 술과 약도 구분하지 못하나?”라는 교수의 말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3 문경 공장에 있는 오미자 와인 셀러.스틸 와인은 오크통에서,스파클링 와인은병에서 숙성시킨다.4 이종기 교수(사진 왼쪽)가 오미자 와인을 병입하고 있다.
“그날의 굴욕에 세계 애주가들이 감탄할 만한 한국의 명주를 반드시 내 손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고향집에 연구소를 만들고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물, 과일로 양조실험에 착수했죠.”
27년간 기업에서 윈저, 패스포트, 섬씽스페셜 등 국내산 유명 양주의 제품 개발과 시바스리갈, 조니워커 등의 국내 론칭을 담당한 발효·숙성 전문가인 그는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원료에 대한 경험과 수차례의 해외연수를 통해 다양한 신제품 개발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우리의 열매에 착안했다.

“와인의 경우 기후상 포도 수확기가 우기인 우리나라와 잘 맞지 않고, 이미 기라성 같은 세계의 와인들과 경쟁할 수 없어요. 우리만의 특출난 것을 발견해야 했고, 많은 시도 끝에 떠올린 것이 어린 시절 한의원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약재로 가꾸시던 탐스러운 오미자였습니다.”
한반도가 원산지인 데다 매력적인 색조와 상큼한 신맛, 은근한 단맛, 쓴맛과 매운 허브향에 간간한 짠맛까지 지닌 오미자는 천혜의 양조 재료였다. 프랑스 로제와인에도 뒤지지 않는 은은한 빛깔과 스파이시한 향은 와인으로서 최고의 경쟁력이다.

“서양인들이 대항해시대를 열어 동방에서 구해간 것이 뭔가요? 그들은 애초에 후추를 구하러 온 겁니다. 느끼하고 쉽게 질리는 서양 요리에 동방의 향신료가 절실했던 거죠. 바로 그 점에서 과일이지만 후추 같은 스파이시향을 갖춘 오미자가 식사에 곁들이는 와인으로 제격이라는 겁니다. 과일 중에 이런 것은 오미자밖에 없거든요.”

한반도 토종 열매, 천혜의 양조 재료
향과 색은 더없이 이상적인 오미자였지만 뜻밖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맛이 강하고, 쓴맛과 매운맛이 미생물 활동을 억제해 발효가 잘 되지 않았다. 수년간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발효실험을 거듭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2007년 영남대가 개설한 양조학과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오미자 와인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1년반 동안 실패를 거듭하다 2008년 여름 균주를 확인하고 문경에 ‘JL크래프트와이너리’라는 이름의 공장과 연구소를 세워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수백 번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플라스크의 시료가 유달리 격렬하게 부글거리는 것을 보게 됐어요. 거기서 버블링을 이용한 오미자 발효에 실마리를 얻었죠. 수시로 에페르네를 방문하며 콧대 높은 샴페인 메이커들의 조언을 구했고, 결국 내산성 효모를 이용해 스파클링 와인 개발에 성공하게 된 겁니다.”

오미자는 뇌의 혈액순환을 돕고 항산화물질이 풍부한 대표적인 건강식품으로 그 효능이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술로 만들어도 뒤끝이나 숙취가 거의 없다. ‘막시모윅지아 티피카(Maximowiczia typica·최대한의 맛)’라는 라틴어명처럼 모든 맛의 구성요소를 갖고 있어 한식은 물론 중식이나 프랑스식 등 모든 요리와 깔끔하게 어울린다. 스파클링 와인은 통상 식전주로 쓰이지만, 스파이시 향과 쌉쌀한 맛 때문에 메인 요리와 곁들이거나 디저트 와인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프랑스, 스위스 등 외국인 셰프들의 평이다.

“모든 맛과 잘 어울려 다양한 용도를 갖춘 만큼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줄 대표 명주라는 명분 외에 농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력 모델이 될 수 있는 미래산업이라는 데 뜻을 모아 동료 교수들도 재정적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미자 와인이 세계 명주로 자리잡으면 우리 산골마다 오미자 농원이 생겨나겠죠. 프랑스 브루고뉴나 이탈리아 피에몽테의 끝없이 펼쳐진 와인밸리처럼 우리나라에도 백두대간을 따라 오미자 와인가도가 생겨나면 한국 농업이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우리 토종 원료를 사용해 현대의 발전하는 산업에 방식을 맞춰가는 것이 진짜 전통주를 발전시키는 일이 될 겁니다.”

세계에 통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라벨과 패키지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돈페리뇽의 옛날 병과 닮은 ‘에페르네’ 병과 세계 코르크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는 포르투갈 코르크를 사용해 정통 스파클링 와인임을 강조했다. 캡실도 오미자를 강조하기 위해 레드와 블랙만으로 세련되게 디자인했다. 20년의 열정을 쏟아부은 개발자 이종기 교수의 캐리커처도 라벨과 코르크에 새겨 와인 명장의 자부심을 표현했다.

이종기 교수는 2005년 술과 풍류의 고장 충주 남한강가에 사재를 털어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을 지었다. 전 세계 와인, 맥주, 위스키 등을 만드는 도구와 술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전시 중이다. 술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무관심에 재정은 거의 고갈상태지만, 우리나라에 명주가 나오려면 세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운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국 사람들은 술에 대해 너무 몰라요. 옛날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술에 대해 배웠거든요. 어릴 때부터 가정은 물론 서당과 향교에서 술에 대해 배우고,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친 책 ‘향음주례’의 서문을 정조가 직접 쓰기도 했죠. 유럽인들은 식사를 하면서 와인, 맥주를 자연스레 함께 하니까 어릴 적부터 술문화를 배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만 강하고 술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요. 제가 평생 술에 빚지고 살았으니 술로써 술문화 향상에 기여하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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