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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태어나 어찌어찌 살다 죽지,찡하고 때론 먹먹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

“암튼, 아직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뭐 이렇게 써보려고요.”
2009년 8월 중순, 이런 메모가 날아온 그날부터 다음해 1월까지, 새벽마다 윤성희 작가와 10장 안팎의 원고를 주고받았다. 등단한 지 만 10년, 윤성희의 첫 장편소설 『구경꾼들』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웹진 ‘나비’에 일일연재를 시작해 매일 오전 10시에 업데이트돼야 할 원고는 전날 밤에 도착하거나, 당일 새벽에 도착하거나, 때로는 10시가 임박해 도착하기도 했다.

숨은 책 찾기 <2> 윤성희 장편소설 『구경꾼들』


“왜 계획만큼 빨리 안 써지는 걸까요? 이제 분리수거하러 가야 해요. 일요일까지 50장 넘기면 닭발과 소주를 사줘요. 어제 TV를 봤는데, 거기 ○○가 나왔거든요. 큰삼촌이 고등학생이 되면 이런 캐릭터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아팠어요. 월요일이니까 직장인처럼 다시 기운낼게요….”
“일 안 하고 TV 봤단 말이에요? 사줄게요, 닭발. 곧 엄마 아빠 결혼 40주년이에요. 가족여행 한번 갈까 그래요. 이러면 정말 곤란. 교정 볼 시간은 줘야지. 일단 가보자고요….”

매일같이 원고를 주고받다 보니 그날그날의 일상까지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렇게 5개월, 단행본 작업을 위해 작가 혼자 다시 3개월을 손본 후 받아든 『구경꾼들』은 크게 손보지 않은 원고였음에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왔다.

“최근에 저는 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 하는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없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도 이러한데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또 오죽할까요. (…) 존 버거의 말을 빌리자면 ‘일어나는 일마다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다면 이야기를 한다는 일은 불필요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 자기 자신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고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마 그럴 겁니다. ‘나’는 자기 자신의 삶을 구경꾼의 자세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는 그렇게 덧붙였었는데,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경꾼들』 속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를 포함해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삼촌과 작은삼촌, 전학생, 여학생,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일상의 우리가 엄마나 아빠이고, 딸이거나 아들이며, 아내와 남편이듯.

하지만 학생이고 회사원이고 백수인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온전한 단독자이듯 작가 윤성희는 소설 속 주변인물들 하나하나에게까지 그들만의 고유한 이야기, 그들만의 작은 역사를 만들어 놓는다. 중환자실의 간호사에겐 어렸을 적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기억이 있고, 25년째 한 공장에서 빵을 만들고 있는 아주머니에겐 20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이 있거나, 여덟 살 때 헤어진 엄마를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구경꾼들』을 읽는 것은 누군가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추어보는 일과도 비슷하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천천히, 한 장 한 장 꺼내어 사진 뒤쪽의 잉크가 바랜 메모들과 조금씩은 변해가는 글씨체, 거기에 덧대어진 작은 기억들까지 함께 읽는 일. 그러다 보면 사진첩의 주인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했던 이들의 이야기까지 하나씩 꺼내어져 되살아나듯, 『구경꾼들』을 읽다 보면 이야기들은 점점 더 가지가 늘어나고 잎이 무성해진다. 잠깐은 킥킥거리고 잠시는 코끝이 찡하고, 또 얼마간은 책장을 덮어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누구나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웃고 울고 죽는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을 사는 일은 너무나 재미없고 우울한 일일 것이다. 다보탑을 사이에 두고, 노트르담을 배경으로 하고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연인 혹은 친구들이 어디 하나둘일까. 하지만 그들 각각의 시간들엔 무수한 우리를 ‘나’이게 만들어 주는 나만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구경꾼들』을 읽는 시간은 다시 한번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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