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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학번 동갑' 이해찬·김한길, 친하던 시절엔

손끝만 잡은 두 사람 민주통합당 김한길 보편적복지본부장(왼쪽 둘째)과 이해찬 한반도평화본부장(왼쪽 셋째)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제1차 민생공약특별위원회의’에 참석해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이들이 각자 문재인 좋은일자리본부장(왼쪽)과 문성근 대표대행(오른쪽)을 잡은 손과 이들 두 사람이 잡은 손의 강도에 차이가 있다. 이해찬 본부장이 김한길 본부장 검지만 잡고 있다. [오종택 기자]


6월에 치러질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이 이해찬(60) 상임고문과 김한길(59) 당선인의 양자 대결로 좁혀지고 있다. 당초 또 다른 한 축이었던 박지원 최고위원이 이 고문과 막후 합의에 따라 원내대표 경선으로 방향을 틀면서다.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당내 대표적 지략가 두 사람이 벌일 승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선거전략의 달인’ 이해찬·김한길, 당 대표 경선 맞짱
민주당 양자대결 압축



 현재로선 이 고문의 우세가 점쳐진다. 당내 최대 계파인 노무현계 좌장인 데다 박 최고위원과 대선 유력 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까지 안고 있어서다. 반면 ‘탈(脫)계파’를 자임하는 김 당선인은 세(勢)가 없다. 4년 만의 정치권 복귀에 따른 공백 때문이다. ‘이·박’ 막후 합의에 반발하는 범노무현계 일부와 ‘비(非)노무현계’의 측면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이는 한 살 차이지만 두 사람은 같은 71학번이다. 또 정계에 입문하기 전부터 개인적 인연이 깊은 사이다. 김 당선인의 부친(김철 전 통일사회당 당수)을 매개로 소싯적부터 교류를 해왔다고 한다. 김 당선인이 1995년 탤런트 최명길씨와 결혼식을 하는 방송 화면을 보면 신랑 측 하객으로 참석해 활짝 웃고 있는 이 고문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김 당선인이 96년 15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둘의 관계는 라이벌로 변했다. ‘선거전략’이라는 전공이 겹친 탓이었다. 97년 대선 때 이 고문은 대선기획부본부장으로, 김 당선인은 방송총괄팀장으로 활약하며 김대중 정부 탄생의 공신이 됐다. 2002년 대선에서도 각각 선대위 기획본부장·미디어특별본부장을 맡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협상을 주도했다. 결국 정권 재창출을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다 둘 사이에 긴장이 본격화된 건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부터다. 이 고문이 창당기획단장, 김 당선인이 전략기획단장을 맡으면서 당 운영 방안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고 한다. 김 당선인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계 단일 후보로 나선 이 고문 대신 정동영 의원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런 긴장은 4·11 총선 직전에도 이어졌다. 한명숙 전 대표가 김 당선인을 전략 공천하려 하자, 이 고문 측이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류는 26일 민주통합당 민생공약실천특위의 회의장에서도 드러났다. 각각 한반도평화특위(이 고문)·보편적복지특위(김 당선인) 본부장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한 두 사람은 간단한 악수와 눈인사만 나눈 채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참석자들이 모두 손을 잡고 일어서 사진을 촬영할 때도 바로 옆에 선 두 사람은 서로 손가락 끝만 살짝 걸쳤을 뿐이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27일 “이 고문과 김 당선인 모두 선거전략가로서는 자신이 한 수 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꽤 흥미로운 대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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