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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전부는 아니다

장혁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중학생 시절 같은 반에 아주 밝은 아이가 있었다. 활발한 성격에 인기도 많았다. 어느 날 체육수업을 하는데 그 아이답지 않게 시무룩해 보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나는 의아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내가 보던 그 아이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며칠 뒤 그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아이가 일진으로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건 영결식장에서 알았다.



 10년도 더 넘은 세월이 흘렀다. 같은 비극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당황한 교육과학기술부는 부랴부랴 실태조사를 했다. 교육계는 발칵 뒤집혔다. 설문 응답 학생의 75%는 학교폭력 가해자인 일진이 학교 내에 존재한다고 답했다. 모범생들이 모인 민사고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천사 같은 아이들 사이에 폭력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깊게 드리워져 있다.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어른들은 믿지 못한다. 어른들의 시각에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시각으론 민사고 같은 공부 잘하는 학교는 폭력 없는 성역으로 보이나 보다. 용기 있게 폭력을 쓰는 무리가 있다고 밝힌 소수 아이의 주장은 당연히 거짓으로 생각한다. 설문조사의 참여도가 낮게 나온 이유에 대해서도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모두 ‘학교폭력이 심한 건 맞는데, 우리 학교는 아니다’는 배경을 깔고 있다. 이미 이런 식의 현실인식이 퍼져 있는데 아무리 정확하게 실태조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학교폭력 대책은 숫자와 통계로 세우는 게 아니다. 폭력의 실체가 정책과 제도로 쉽게 드러날 거라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나 역시 중·고교 시절 잊을 만하면 학교폭력 실태 설문지를 받았지만 여기에 희망을 거는 친구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틀에 박힌 설문지로 학교폭력의 실태와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교육당국에 묻고 싶다. 우리 교실에 멍이 들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실태조사란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폭력은 웹툰과 게임이 없던 시절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다. 중요한 건 현실을 인정하고 학교폭력 진화에 나서는 일선 교사들의 적극적인 자세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 청소년들이다. 아이의 정서변화를 우편으로 보낸 설문지로 알아차리기엔 너무 늦다. 교실 한복판으로 들어가 학생들과 부대끼며 작은 표정의 변화라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학생들을 관심 있게 바라봐 주는 선생님이 내 주변에 있었다면 나는 중학생 시절 친구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계가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이미 또 어떤 아이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문조사지를 뒤적거리는 선생님보다 버젓이 담배 피우고 있는 일진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선생님에게 학생들은 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다. 부디 학생들의 시각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봐 달라. 학교폭력 근절의 첫 번째 조건은 정확한 실태조사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라는 간단한 명제가 보일 것이다.



장혁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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