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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점입가경 유로존 파국 드라마

정경민
뉴욕특파원
1997년 정부 과천청사를 출입했던 기자라면 12월 3일을 잊지 못한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주권을 내준 날이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마치 총독처럼 발표장에 앉았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이던 세 후보로부터 대통령이 되면 IMF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 주권국가로선 참기 어려운 수모였지만 도리가 없었다. 미국은 한술 더 떴다. 당선증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자에게 재무부 차관을 보내 정리해고제와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등 소위 ‘IMF 플러스 알파’ 조치까지 전리품으로 챙겨갔다.



 15년이 지난 요즘 유럽의 ‘돼지국가(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의 이니셜)’를 대하는 IMF의 태도를 보면 복장이 터진다. 우리에게 했던 대로 하자면 엎드려뻗쳐를 시켜도 모자랄 판이다. 한데 행여 유로존 한 곳이라도 부도낼까 IMF가 되레 전전긍긍이다. 오죽하면 미국 워싱턴 포스트(WP)가 IMF의 이중잣대를 비꼬기까지 했을까. 그렇게라도 위기를 수습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한데 아무리 재봐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외환위기는 대기업에서 비롯됐다. 감당도 못할 빚으로 마구 사업을 확장하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달러 기근이 닥치자 도미노처럼 무너진 거다. 거기 물린 은행·종합금융사가 줄줄이 파산했고, 그걸 막으려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났다. 파장은 컸지만 처방은 의외로 단순했다. 부실 대기업과 거기 물린 금융회사만 솎아내면 됐다. 가계나 정부 금고는 튼실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금 모으기에 자발적 동참이 쇄도했을 만큼 국론도 갈라지지 않았다.



 이와 달리 유럽 위기의 진원지는 가계와 정부다. 아일랜드·스페인에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가계에 대출해 준 은행이 줄도산을 한 게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그리스·이탈리아는 포퓰리즘 복지정책과 부패로 정부 재정이 거덜났다. 과도한 빚으로 흥청망청 쓰다가 위기를 맞은 건 매한가지다. 그렇지만 처방은 전혀 다르다. 가계와 정부를 수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달리 가계는 ‘표’라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예수·부처 사촌만 사는 곳이 아니라면 어제까지 주던 연금 싹둑 자르고 공무원더러 짐 싸라는데 얼씨구나 표 줄 유권자는 이 세상엔 없다.



 유럽 위기를 수습할 묘방은 딱 하나다. ‘베짱이’ 그리스·아일랜드 등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고, ‘개미’ 독일은 불쌍한 이웃을 위해 곳간을 여는 거다. 그러나 독일·프랑스·네덜란드·그리스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심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베짱이와 개미 사이 감정의 골도 깊어만 간다. 어쩌면 유로존 파국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국제금융시장 위기의 불똥은 늘 돈 빼가기 좋으면서 ‘빽’은 없는 한국 같은 곳에 떨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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